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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학년도 4회_최우수상]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분명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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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되는 것이 아니라, 슬픈 사람이 두 명이 된다.’라고 이야기한다. 나도 상담을 받기 전까지 운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초라한 내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리라 생각했다. 나조차도 오랜 시간 떨쳐내기 힘들었던 마음 깊은 곳의 어두운 과거, 생각, 감정을 꺼내어 이야기하면 들어주시는 상담 선생님께도 부정적인 것들이 옮겨가 선생님을 괴롭게 할 것 같았다. 그것은 정말 슬픔을 나눴더니 슬픈 사람이 두 명 생기게 되는 일이었다. 게다가 나도 받아들이기 어렵고, 이해하지 못하는 내 생각, 행동, 감정을 이야기했을 때, 상담 선생님께서 당황하시거나 부정적인 피드백을 주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겁나게 했다. 아킬레스건과 같은 취약한 부분을 겨우 용기 내서 표현했는데 받아들여지지 못하면, 치명적인 큰 상처로 돌아올 것 같았고, 그런 순간을 겪게 되면 다시는 그 어떤 누구에게도 내 이야기를 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런데도 내가 심리상담에 참여하게 된 동기는, 나를 괴롭히는 과거의 상처와 그로 인한 트라우마들, 매번 나를 옭아매고 끌어내리는 부정적인 감정, 생각들이 지긋지긋하고 구질구질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한마디도 건네지 못할 심한 말들을 습관처럼 서슴없이 나를 향해 내뱉고, 내 모습이 어떻게 보이는지 끊임없이 검열하고 채찍질했다. 겨우 일궈낸 성공은 축소하고 마음껏 누리지 못했으며, 실패는 밤낮 구분 없이 쓰게 곱씹으며 오랜 시간 괴로워했다. 나에겐 매우 엄격하고 다른 사람에겐 한없이 관대했다. 이런 내 ‘고질병’은 과거의 상처들로부터 비롯되어, 성인이 될 때까지 단 한 순간도 나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대학원을 진학하고 나서, 나의 고질병은 조절하지 못할 만큼 더욱 심해졌다. 나는 한시도 나를 가만두지 못하고, 내가 꿈꾸는 직업의 필수 역량이나 같은 해 입학한 동기들과 나를 비교하며 내 자질을 의심하고 깎아내리는 것으로 이어졌다.


빠듯한 일상에도 조금씩 꿈꿔왔던 미래가 대학원에 입학한 후, 더 이상 기대되지 않았다. 나를 내보여야 하는 과제, 발표, 강의 등을 수행하는 일이 너무 어려웠다. 하면 할수록 나의 부족한 점을 다른 사람에게 부각하는 것만 같아서, 더 완벽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실시간으로 성과를 보여야 하는 발표마다 심장이 입 밖으로 나올 것 같이 뛰었고 식은땀이 났으며, 말이 꼬이면 당황해서 말을 더 더듬었다. 발표가 끝나면 피드백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상관없이 내가 한 실수에 사로잡혀 펑펑 울고, 자책감에 밤을 지새웠다. 또 어떤 일을 수행할 때 매번 모든 에너지를 쏟았고, 일을 끝내면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 그러자 일을 시작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고된 하루하루가 힘들어서 쉬려고 누워도, 해야 할 일이 눈에 아른거려서 마음 편히 쉴 수 없었고, 눈 가리고 아웅 하듯 현실을 회피했다. 반대로 밤마다 하루를 낭비한 나를 탓하고 죄책감에 괴로워했고, 울면서 겨우 잠이 들었다. 힘들게 잠이 들어도 깊게 잠들지 못해, 1시간마다 깨고 잠드는 것을 반복했다. 나는 더 이상 내일이 기대되지 않았다. 그 어떤 것도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어느 날 이런 내 모습에 덜컥 겁이 났고, 충동적으로 상담을 신청하게 되었다.


힘든 심리적 상황에 쫓겨 상담을 신청했기에, 나는 글 초반부에 언급한 걱정들(달라질 것 없음, 슬픈 사람이 2배)로 상담을 취소할지, 두 눈 딱 감고 상담을 시작해볼지 매일 고민하며 신청홈페이지를 들락날락했다. 내가 상담받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는 ‘10년 뒤에도, 아니 할머니가 되어서도 계속 이 고질병을 겪게 된다면 어떡하지. 고질병으로 겪는 부작용(자기 비하, 불면증, 불안 등)을 그때도 겪고 있으면 어떡하지, 그렇게 영원히 미래를 꿈꾸지 않는 사람이 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 걱정은 내가 예약한 날부터 상담 선생님을 만나는 순간까지 계속되었다.


상담을 받기 전 했던 걱정들이 무색하게도, 나는 선생님과 내게 주어졌던 처음의 10회기를 완수하고, 한 달을 쉰 후 다시 10회기의 상담에 참여하고 있다. 상담에 참여하면서 가장 많이 바뀐 생각은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였다. 상담을 받기 전 나는 과거로부터 축적되어온 부정적이고 건강하지 못한 내 모습이 상담을 통해 절대로 쉽게 변화되지 않을 것이라, 섣부르게 예단했던 것 같다. 하지만 16회기 째 상담받고 있는 지금의 나는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분명히 있다.’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이 확신의 근거는 ‘마음의 공’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감정, 생각들을 떠오르지 않게 억압하는 것은 매우 많은 심리적 에너지를 사용하는 일이라고 한다. 마치 수영장에서 공기가 빵빵한 공을 수면 아래로 꾹 누르고, 계속해서 떠오르려는 공을 떠오르지 않게 하는 일과 같다는 것이다. 당연하듯 마구 떠오르려는 공을 떠오르지 않게 하려면, 많은 신경을 공에 소비해야 하므로 개인은 자연히 예민한 상태가 될 수밖에 없다. 공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 조심스럽고, 어쩔 수 없이 공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주체할 수 없게 차올라, 영문도 모른 채 눈물을 흘리며 당황스러워하는 일도 겪게 된다. 결국, 공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다른 사람들로부터 감추기도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상담은 떠오르려는 공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고, 공이 언제부터 생기게 되었는지, 공을 수면 아래로 누르면서 느끼는 심리적 불편함, 부작용은 어떤 것인지를 관찰하게 하고, 능동적으로 나를 돌아보고 이해하는 과정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내 공은 빙산의 일각처럼 너무나도 커서, 나는 내 수영장을 눈물로 가득 채우고, 사람들에게서 공을 숨기기 바빴다. 나는 스스로 ‘왜 이렇게도 운이 없을까?’ 생각할 만큼 유년기부터 겪을 수 있는 모든 부정적인 사건을 겪어왔다. 내가 살아온 인생을 드라마로 만들면 사이다 장면 없이 계속되는 사건, 사고와 고구마 가득한 장면들에, 중도하차 할 시청자들이 많을 것이라 장담할 수 있다. 세상이 나를 버렸다고 생각되는 모든 순간을 나는 어떤 도움도 없이 오롯이 그 순간을 버티고, 내일을 꿈꾸지 않는 하루로 연명하며 살아냈다. 과거의 상처들은 많은 시간이 지남에도 잊히지도 흐려지지도 않고,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며 질척한 구렁텅이로 끌어 내렸다. 정리되지 않은 과거의 상처들은 내 공을 점점 부풀려댔다. 나는 사람들에게 내가 공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들키고 싶지 않았다. 사랑만 듬뿍 받고 자라 구김 없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그 결과, 나는 완벽함을 추구하기 시작했고, 나를 채찍질하며, 심각한 자기 비하를 하고, 내가 만들어낸 높은 기준에 숨 막히는 압박감을 느꼈다. 어느 날 나도 모르게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공이 부풀었고, 나는 쫓기듯 상담을 신청하게 되었다. 내 이야기가 상담 선생님께 받아들여지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보다 나를 짓누를 듯이 부풀어 오르는 마음의 공이 무서웠다. 그렇게 생명이 걸린 동아줄을 붙잡는 심정으로 상담 선생님께 나의 현재 상태와 고민을 이야기했던 것 같다. 상담 초반에는 마스크를 바꿔 써야 할 정도로 상담 내내 펑펑 울었다(상담 받는 날에는 가방에 여분의 마스크를 꼭 챙겨갔다). 눈에 잠기지 않는 수도꼭지가 달린 것처럼 쉴 새 없이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상담실을 나설 때면 눈이 꼴뚜기 왕자처럼 팅팅 부었을까 봐 너무나도 민망했다.


상담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이제는 무뎌졌다고 생각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나에게 너무나도 큰 상처로 남아 나를 계속 상처입히고 있음을 깨달았던 순간이었다. 상담을 통해 마음의 공이 생긴 이유를 굽이굽이 찾아가다 보면 과거의 상처들을 하나씩 마주하게 되고, 최근의 큰 상처들에 가려져 미처 아물지 못한 어린 시절의 큰 상처들을 발견하게 된다. 제때 치유하지 못한 상처는 절대 저절로 아물지 않는다는 것을 절절히 느꼈던 것 같다. 상담 선생님께서는 어린 시절의 상처 입은 나를 마주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셨고, 무한한 지지와 신뢰를 매 순간 내게 전해주셨다. 결국, 나는 과거를 직면하고 과거의 나를 들여다보며 그때의 내가 어떤 마음과 감정을 느꼈었는지 살펴볼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상담 선생님께서는 과거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힘이 생긴 지금의 내가, 과거의 어린 나를 위해 어떤 것을 해줄 수 있을지 상상할 수 있게 도와주셨다. 지금에 와서 어떤 행동을 취하든지, 과거의 상황이나 상처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진심으로 과거의 나를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려 노력했다. 막상 상담 때는 과거의 아픔과 상처가 너무나도 크게 올라와서 잘 모르겠다는 대답밖에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상담이 끝나고 1주일 내내 밥을 먹으면서, 길을 걸으면서, 잠을 자기 전 등 모든 순간에 과거에 내가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됐다. 점차 어떻게 어린 나를 도울 수 있을지 생각이 정리되는 동시에, 나는 과거의 나를 어루만지고 보살피며 오래된 상처를 아물 수 있는 상태로 만들 수 있었다. 정말 운다고 달라지는 일이 분명히 있음을 몸소 체감하게 된 것이다.


이 밖에도 상담 받으며 내면의 이야기를 꺼내다 보면,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긍정적인 혹은 부정적인 모습이나 내 성향에 대해 객관적으로, 상담 선생님의 시각으로 나를 돌아볼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평소 생각이 너무 많아 내면 탐색을 많이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담 받을 때면 “거기까지는 생각해본 적 없는 것 같아요.”, “이 부분은 집에 가서도 고민해봐야 할 부분인 것 같아요.”, “어, 그건 정말 생각하지도 못했어요. 선생님 말씀대로 과거의 이 부분은 지금의 제 생각 혹은 행동과 이어지는 것 같네요.”라는 말을 자주 하게 되었다. 그만큼 상담을 통해 미처 내가 알지 못했던 나의 모습이나 생각, 행동, 감정들을 탐색하고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50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누군가 오롯이 내 이야기에 집중하고 공감해주며 다정한 위로를 건네주는 일은 한평생 경험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일상에서도 친구와 가족 등 주변인들과 나와 관련한 이야기나 고민을 충분히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상담은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고, 그와 비교할 수 없이 고차원적이고, 끊임없이 나에 대해 고민하고 탐구해야 하는 성장의 과정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상담에 참여하게 되면,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기도 하고, 지금 내 모습 중 부정적인 면모들을 좀 더 기능적인 면모로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고 추구하게 된다. 내가 느끼는 감정, 떠오르는 생각, 이를 바탕으로 하는 행동들을 관찰, 이해하고 온전히 수용할 수 있도록 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일들은 상담을 통해 모든 사람이 ‘반드시’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불교에는 모든 사물의 현상이 인과의 법칙에 따라 특정한 시간과 공간의 환경이 조성되어야 일어난다는 뜻을 가진 ‘시절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상담도 ‘시절 인연’의 특성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현명하고 따뜻한 상담 선생님을 만나도 내가 준비되지 않거나, 내가 나를 돌아볼 마음의 힘이나 여유가 없다면 위에서 경험했던 상담을 통해 겪을 수 있는 긍정적인 일들을 경험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내가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 상담을 받는 것이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나는 상담을 마음에 씨앗을 심어두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씨앗을 뿌린다고 모든 씨앗에서 파릇파릇한 새싹이 돋아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마음에 씨앗을 심어두면 언젠가 특정한 시간과 공간의 환경이 조성되었을 때 ‘반드시’ 새싹이 돋아날 것이다. 나는 학부생 때 40회기의 상담을 받고, 대학원에 진학해 ‘41회기’의 상담을 맞이해서야 겨우 과거의 상처들을 온전히 솔직하게 상담 선생님께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과거의 상처를 솔직하고 가감 없이 말할 수 있게 된 것은, 41회기 이전 40회기의 수많은 시간을 다정하고 따뜻한 선생님들과의 상담을 통해 고민하고 노력하며 마음에 심어두었던 씨앗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연꽃 씨앗은 천년이 지나도 새싹을 틔워낼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1200년 전 연꽃 씨앗이 발굴되었는데, 이 연꽃 씨앗에서 새싹이 자라났다고 한다. 상담 장면이든, 일상이든 나에 대한 이야기나 내가 경험했던,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다른 사람에게 표현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상담을 통해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익숙해지고, 나를 돌아보고 이해하며 온전히 수용하는 경험을 아주 조금씩이라도 겪게 된다면, 마음에 변화의 씨앗을 심는 일로 이어지고, 궁극적으로 건강하고 기능적인 나로 성장할 수 있는 새싹을 틔워낼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한다. 만일 지금 내 수기를 읽고 있는 당신이 상담 받을지 말지, 겁이 나 고민하고 있다면 꼭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상담은 항상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고민이 가볍든 무겁든 상담 선생님은 진중하게 들어주고 나눠주실 것이라고. 상담은 변화의 가능성을 머금은 씨앗을 마음에 심는 일과 같아서, 지금의 상담을 통해 변화를 가져오든 가져오지 못하든 당신의 내면적, 외면적 성장에 큰 밑바탕이 될 것이므로 망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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