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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학년도 4회_우수상] 완벽의 반대말은 실패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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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도 여름에 두 번째 학사경고를 받았다. 지난 두 학기는 공부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해 수업에 부진했기 때문이다. 분명 목표가 있기에 온 대학이지만 그 사이에 우울증이 심해져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더 우울한 악순환이었다. 부모님은 내가 학교에서 쫓겨날 위기라는 통지서에 나에게 전화를 거셨다. 침착하신 목소리에 가슴이 내려앉았다. 며칠 동안은 하루 종일 침대에서 내 존재의 의미를 생각했다. 만족하지 못하는 일들만 떠올라 나의 가치를 찾을 수 없었다. 학사경고자 상담을 신청하라는 문자가 왔을 때, 나는 어렴풋이 자퇴하는 상상을 했다. 당시에는 그것 말고는 답을 찾을 수 없었다.


학사경고자 상담을 위해 상담센터에 갔을 때 우울증으로 인해 글자가 잘 읽히지 않아 휴학했던 일, 새벽에 응급실에 갔던 일, 마음의 준비 없이 다시 뛰어든 대학 생활과 홀로 살기에 적응하지 못했던 일들을 털어놓았다. 그러므로 자퇴할 생각이라는 말에 상담사 선생님은 무작정 말리지 않으셨다. 차근차근 객관적인 시선으로 대학을 자퇴하면 어떤 일을 할 것인지, 나에게 직업을 선택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스스로 생각해볼 수 있게 기다려 주셨다. 생각해낸 여러 가능성을 두고 성공하기 위해 들여야 하는 시간도 비교해 주셨다. 당시에 다른 큰 계획이 없던 나는 자퇴를 보류하기로 했고, 그대로 개인 심리 상담을 진행하게 되었다.


무더운 여름, 평소라면 일어나지 못했을 시간부터 상담을 위해 몸을 움직였다. 상담을 시작한 초반에는 나래관으로 이동하는 시간 동안 내가 왜 자퇴를 강경하게 주장하지 못했는지, 어쩌면 상담을 받는 이번 학기도 의미 없는 시간이 되는 게 아닐지 걱정했다. 상담을 진행하며 우울한 지금의 나를 구성하고 있는 많은 기억을 꺼내었고, 선생님의 조언을 통해 남아있는 후회를 정리하고 남들의 말에 더 이상은 휘둘리지 않기 위해 생각을 다잡는 시간을 반복했다. 그리고 여름방학이 끝날 때쯤에서야 나는 항상 모든 것들을 잘하고 싶어서 그랬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투른 현실과 완벽한 이상의 부조화 속에서 자라났던 부정적인 마음을 계속 끄집어내어 나를 괴롭게 하는 것 대신, 앞으로는 완벽에 집착하지 않고 스스로 관대해지기로 다짐했다. 안정적인 마음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상담은 나에게 많이 도움이 되었는데, 나에 대한 편견을 가지지 않은 사람의 격려이기 때문이었다. 나의 이야기를 통해 그 속에서 내가 잘했던 것을 발견해 주시고, 다시 할 수 있다고 나는 그런 힘이 있다고 믿어주시는 상담사 선생님의 말씀들이 내게 크게 다가왔던 것이다.


방학 동안은 이후 학교생활에 원활하게 적응하기 위해 기본적인 생활 습관을 고치는 것에 중점을 두었고 학기가 시작하자 수업에 제대로 출석하는 것이 나의 첫 목표가 되었다. 그동안 무질서하게 지냈기에 처음에는 학교의 수업을 따라가는 것도 조금 벅찼다. 공지 사항을 놓치는 일도 있어서 이후에는 듣자마자 일정을 써놓고 정리하게 되었다. 수업이 없는 시간에는 일부러 학교를 돌아다니며 적응했다. 가보지 않았던 건물에서 공부를 하고 교내 식당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요일마다 스스로의 루틴을 만들어 반복하니 이번에도 잘 해내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했던 마음이 줄어들었다. 상담 시간에는 일주일 동안 해낸 일, 아쉬웠던 일 등을 말하고 피드백을 받으며 다음 주는 어떤 것을 보완할 수 있는지 체크했다. 전처럼 조바심이 나서 불안할 땐 선생님이 해주신 말들을 떠올리며 침착하게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비슷한 하루들이 반복되었지만, 학교를 거닐며 계절의 변화에 따른 풍경을 바라볼 때마다 하루 종일 누워 핸드폰을 하지 않아도 시간이 빨리 흘러감을 느낄 수 있었다. 몸이 바빠지니 고질적인 문제였던 불면증도 나아져 한 시간 안에 잠이 들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을 줄이고 행동하는 것이 나를 무너지지 않게 하는 길임을 체감하게 되었다.


수업에 집중하는 것이 전보다 익숙해지고, 시험 기간이 다가왔다. 전에는 항상 벼락치기를 했었는데, 앞으로는 지속 가능한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전처럼 학사경고를 맞을 수 없어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효율적으로 시간을 사용하자 조별 과제에서도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여러 의견을 내놓고 이끌 수 있었다. 일상생활과 수업에 적응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누구의 강요도 아닌 내 안에서 내가 답을 찾았기 때문이다. 내가 뭘 해내고 싶은지를 알아내고 그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자 나 스스로를 바꾸는 일은 그 무엇보다도 당연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나와 함께 나의 길을 찾아준 상담사 선생님이 계셨다.


긴 우울증을 겪으며 상담이라는 선택지는 사실 한 번도 택한 적이 없었다. 나는 사람을 불신하는 면이 있었고 힘들 때는 모든 상황을 다 알지 못하는 남들이 해 주는 어쭙잖은 위로가 오히려 듣기 싫었다. 특히 교내 상담은 무작정 학교의 편이고 그저 나를 잘 타일러 수업을 제대로 듣게 할 거라는 이상한 선입견이 있었다. 하지만 상담을 진행하며 교내 상담센터는 학생인 내가 아닌 정말 개개인의 편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족, 친구 등의 자연적인 조력자를 만나 적절한 시기에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왔지만 정말 감당할 수 없는 큰 문제가 생기면 그들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기가 어려웠다. 점점 가라앉는 마음과 부정적인 생각 속에 갇혀 세상을 볼 수 있는 시야가 좁아져서 남들과 나를 비교하기만 했었다. 그래서 나와 같이 스스로 해답을 찾는 것에 한계를 느끼거나, 어떤 것을 해야 하는지 알면서도 마음이 힘들어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친구들이 꼭 상담센터의 도움을 받아보길 바란다. 손을 뻗어 나를 위해 여러 조언을 해주고 급한 마음의 브레이크를 잡아주는 전문적인 조력자를 만나봤으면 한다. 물론 상담을 통해 마법처럼 모든 문제가 한 번에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나를 믿어주시고 격려해 주셨던 말들은 상담이 끝난 이후에 더 와닿고 있어 의욕을 주고, 10주라는 시간 동안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고 점검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로 좋았기 때문이다. 나도 아직 해결 중인 문제들과 상담 이후 새롭게 생겨난 문제들이 있지만 더는 무섭지 않다. 다시 무너지더라도 지금처럼 노력하고 이겨낼 힘이 있는 나 자신을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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