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학년도 2회_ 최우수상] '나'를 마주하는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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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마주하는 시간들
저는 2020년 여름방학에 처음으로 개인 상담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2020년 1학기에 저는 ‘집단상담’ 수업을 최윤미 교수님께 받았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일정이 변동되어, 이론 수업 후 집단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학점을 위해 프로그램에 참여하였습니다. 그런데 참가자들과 함께 활동하면서 점점 상담이 가지는 ‘치료적 힘’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참가하면 할수록, 너무 즐겁고 집단상담 시간이 기다려졌습니다. 그러나 시간은 7주로 한정되어 있었고, 집단상담에서 개인적이고 깊은 얘기를 꺼내놓기 꺼려졌습니다. 너무 심각한 얘기를 하기에는 집단 전체의 분위기, 사람들의 반응, 그 얘기에 도달하기까지의 배경 지식 등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집단 상담 특성상 한 사람만 계속 얘기할 수 없었고, 과거 가정환경과 같은 얘기를 하기에는 그 사람에 대한 배경지식이 부족합니다. 이런 사유들이 모여, 암묵적으로 ‘한 사람’에 대한 깊은 이야기가 아니라 ‘한 가지 주제’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한 가지 주제’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이 오갈 때, 그 주제에 얽힌 과거 경험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집단 상담 참여자들에게는 말하기 힘든 과거 경험과 감정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깨닫고, 저에 대해 더 세세히 알 수 있는 개인 상담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에 대한 죄책감과 아버지와의 가정불화로 개인상담을 받고자 하였습니다. 대학교에 들어오고 얼마 되지 않아서,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뇌출혈로 돌아가셨습니다. 평소 금전적인 부분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다가 갑자기 출혈이 생긴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것에 대해 제가 평소에 돈을 빌려드렸더라면 괜찮지 않았을까, 좀 더 살갑게 해드렸으면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죄책감이 남아,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의 부재로 인해 별거 하시던 아버지가 동생들을 맡게 되었는데, 아버지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아 스트레스를 많이 받음과 동시에 어머니처럼 갑작스럽게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면 동생들을 어떻게 책임져야 할지에 대한 불안감 속에서 지냈습니다. 이런 불안감과 죄책감을 잊으려고 아르바이트를 늘리고 강박적이게 돈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활을 6개월쯤 지속하다보니, 일을 하거나 수업을 듣다가도 눈물이 나고 집에 오면 너무 우울하고 힘들다는 생각을 계속하였습니다. 건강도 날이 갈수록 안 좋아지는 것이 느껴져서 아르바이트도 그만두고 쉬었습니다. 처음에는 일을 쉰다는 것과 남는 시간에 알 수 없는 우울감이 다시 불안하여 일자리를 알아보고, 일을 그만 둔 이유가 생각나 포기하고를 반복하였습니다. 쉬는 날이 길어지니 건강은 나아졌으나 이유 모를 우울감은 계속되었습니다. 나아지고는 싶었지만 무엇 때문인지는 알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에 이런 상태로 일상생활이 유지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집단상담 프로그램을 참여하여 의식적으로 이야기를 꺼내게 되어 제 마음에 상처가 많고 심각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상담하는 것이 좋았으나 집단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중에도 계속 마음이 갈팡질팡하였습니다. 왠지 모르게 낯설고 두렵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종강을 한 후에도 고민을 많이 하다가 어느 날 갑작스럽게 용기가 나 신청하였습니다. 그 당시, 예상외의 고난이 있었습니다. 직접 찾아가기에는 아직 부끄럽고, 어떻게 신청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학교 홈페이지에 안내된 상담센터 전화번호로 먼저 전화를 하였습니다. 전화 받으셨던 분이 본격적인 개인 상담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접수면접’을 먼저 해야 한다고 설명해주셔서 접수면접 날짜를 정하였습니다. 막상 신청하고 나서는 약간 후회했습니다. 용기가 날 때는 무시했던 두려움이 다시 올라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미 약속을 했기 때문에 접수 면접을 나갔습니다.
처음 접수 면접을 하는 거라, 어색하게 질문에 대답하였습니다. 그런데 상담 신청 동기를 물어보는 질문에 제가 너무 울컥하여 이것저것 깊게 대답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너무 길어져 저를 제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이건 어떤 선생님께 상담을 배정해드리는 것이 더 효과가 있을까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려는 목적이어서, 더 깊게 얘기하면 상담 선생님이 배정되었을 때 내담자 분이 한 번 더 이야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 당시에는 뭔가 저 혼자만 감정에 휩쓸려 얘기한 거 아닌지 창피하고 어색하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처음 와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저를 위해 말씀해주신 것 같아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그렇게 접수면접을 마친 후, 상담 선생님을 배정받고 개인 상담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첫 상담 전에는 저는 말을 잘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슨 말부터 꺼내야할지 모르겠어서 아무 말도 못할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근데 막상 무슨 일 때문에 개인 상담을 신청하게 되었냐는 질문에 대답하려 하자, 많은 것들이 쏟아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첫 상담은 약간 어색한 상태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처음 진행할 때의 그 민망함은 제 감정에 쓸려 금세 사라지고 지난 기억들을 꺼내면서 동시에 당시의 감정들이 떠올라 울었습니다. 저는 저의 문제를 너무 한꺼번에 설명하려고 하여서 결국 정해진 시간이 지나, 하고 싶은 말을 다하지 못하고 첫 상담을 마무리하였습니다. 그래서 첫 상담 후에는 제 문제를 다 말하지 못한 것에 대한 답답함과 아쉬움, 그리고 울었다는 것에 대한 민망함이 주된 감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처음에 상담사 선생님이 하시는 질문에만 대답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상담을 시작했습니다. 첫 상담은 워낙 제 사정을 말하느라 제 얘기만 많이 하였지만 두 번째 상담부터는 상담사 선생님께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많이 해주실 것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그런데 상담은 대부분 제가 말하는 것이었고 특별한 조언은 해주시지 않았습니다. 하여 별로 특별할 것이 없다고 여기고 왜 가야하는지에 대해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점점 제 이야기를 하면서 연관되어서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고, 상담사 선생님은 항상 ‘그 당시에 제가 어떻게 생각하였고, 어떻게 느꼈는지’를 질문하셨습니다. 그런 부분에서 저의 기억을 되돌아본 적이 없던 저는 그 당시의 생각과 감정을 떠올리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제 감정을 확신할 수도 없었습니다. 저는 생각보다 제가 느끼는 생각과 감정을 모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비논리적이게 생각하고 있었던 부분에서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 이렇게 생각해볼 수는 없을지, 그 부분이 진짜 아버지가 말한 부분인지 아니면 제가 추측한 것인지’ 등 이런 질문들을 받으면서 혼란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당연하게 생각하던 부분에서 질문을 받았고, 그래서 차근차근 생각해보면 제가 과하게 느꼈던 부분, 오해했던 부분, 막연하게 두려움을 가지고 있던 부분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부분들을 찾아내는 것에도 시간이 걸렸지만, 한 번 찾아낸다고 해서 바로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저에게는 그런 감정을 한 번에 정리하기에는 너무 많은 기억들과 감정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차츰차츰 누그러졌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상담은 제가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는 것 중에,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시는 것’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이후에, 제 주변 사람들이 갑자기 죽을 것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제게는 어머니의 죽음이 제 일생에서 처음 겪은 소중한 사람의 죽음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동생들을 너무 사랑하지만, 아직 대학생인 신분으로 당장 동생들을 책임질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시는 상황에 대한 불안감을 심하게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를 대비하여 돈을 계속 모으고 있는 상황이었고, 그 당시에도 대학생 신분으로서는 상당한 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저 혼자 대학 생활을 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는 돈일지라도 동생들을 책임지기에는 너무 작은 돈이라는 생각으로 계속 돈을 모아야한다는 집착과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상담사 선생님이 제 불안감을 보고, 꼭 동생들에게 완벽한 생활을 해줄 수 있을 정도로 돈이 있어야 하는 것인지, 후에 동생이 성인이 되는 데도 불구하고 짐을 나눠가질 수 없는 것인지, 등등을 물어보셨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제가 보호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조금씩 깨지고, 제가 모은 돈이 계산해보면 적어도 제가 대학생활을 졸업할 때까지는 동생들과 최소한의 생활 정도는 영위할 수 있는 돈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너무 막연하게 큰돈을 생각하고 있었고 그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여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자마자 이 상황에 대한 불안감이 갑자기 사라지는 신기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이렇듯 상담사 선생님은 제가 비논리적으로 생각하고, 감정에 치우쳐진 부분을 알아차릴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단순히 알아차린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효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장 변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언젠가는 변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이런 알아차림이 감정에 치우쳐진 상태에서는 스스로 알아내기가 어렵습니다. 상담사 선생님께서 제가 놓치고 있었던 부분을 알아차리게 해주고, 조금이라도 다른 관점에서 상황을 바라보게 해주어서 이렇게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아버지에 대한 감정을 조금 내려놓고, 어머니를 애도하는 시간을 가지게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어머니에 대한 감정을 아예 내려놓을 수가 없어 아직은 간직하는 것을 선택하였습니다. 상담을 받았는데도 어머니에 대한 감정을 다 떨쳐내지 못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있었지만, 상담사 선생님께서 이런 선택도 존중해주셔서 안도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계속 슬픈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이상하지 않고, 계속 떠올리게 되는 상태여도 괜찮다고, 다만 일상생활에 지장이 가게 되면 그때 또 찾아와도 된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더욱 마음을 편하게 가질 수 있었습니다.
강원대학교는 미래, 인성, 창의, 협동, 실천에 해당하는 5대 핵심역량을 토대로 실사구시형 창의·협동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 개인 상담이 인성, 창의, 협동, 실천 역량을 길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 상담을 통해 저의 문제를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하고, 과거를 천천히 되짚어보았습니다. 당시의 제 감정을 경시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사람의 입장도 생각해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또한 상담사 선생님과 적절히 대화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상담 후에 주변 사람들, 가족들과 새롭게 소통할 수 있었습니다. 과거의 기억으로 인해 발생되는 감정을 인지할 수 있게 되니, 현재 대상과 구분하여 대화할 수 있었습니다. 전보다 더 대화가 편해지고, 그동안 보지 못했던 가족들의 새로운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상담에서 깨달았던 내용을 곱씹어보고 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제가 변하니까 주변도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점점 저를 찾아 나가니, 하고 싶은 것도 많이 생겼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목표 리스트를 작성하여 하나씩 채워나갈 예정입니다. 이런 부분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인성, 창의, 협동, 실천 역량을 향상시켰다고 생각합니다.
혹시라도 상담을 받고 싶지만 아직도 망설이는 친구들이 있다면 한 번이라도 시작해보기를 권합니다. 망설이는 이유에는 다양한 생각들이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고민이 사소하게 느껴진다던가, 혼자서 이겨내야 하는 것 아닌가, 상담을 받는다고 큰 효과가 있는가 등등 많은 두려움들이 발목을 잡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상생활에 지장이 간다면 아주 작은 고민이라도 시작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사소한 고민처럼 보일지라도 자신에게 심각한 고민이면 그것은 심각한 고민입니다. 절대 이상한 것이 아니니, 지금처럼 기회가 있을 때 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