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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학년도 2회_ 은상] 돌담의 돌덩이가 되어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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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의 돌덩이가 되어줄 수 있다.





  나는 모든 순간이 암담하게 느껴진 때가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시작을 알 수 없는 암흑 속에서 모든 것이 갑자기 아득해지는 순간에 내던져진 기분으로 살고 있었다. 깊은 구덩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 짙은 어둠을 보고 오기를 수십 번을 반복하던 나는 ‘아, 나는 원래 어두운 존재인가 보다. 어쩌면 스스로 눈을 가리고 더 깊은 어둠으로 들어가는 우울을 즐기는 인간이었나보다.’라며 지쳐 발버둥도 못 치는 나를 탓했다. 어느 날은 여기저기서 부는 바람들이 만든 불규칙한 일렁임에 감정의 수면이 흔들리더니 얕은 곳만 흔들던 파도가 이미 세워놓은 벽들에 부딪히고 서로 힘을 합치더니 내 감정 깊은 곳까지 무작위로 섞어 놓았다. 그 속에서 나는 저 깊은 곳에 잠수해서 숨을 참고 버티기도 수면 위에 떠서 폭풍 속에 정신없이 버텼다. 그렇게 더는 밖에서 바람이 불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고 이곳저곳에 쳐둔 벽들이 작게 생긴 일렁임을 더 크게 만든 것을 모르고 더 큰 벽을 올리고 더 깊은 심해 속으로 들어갔다. 고립된 바다는 어느새 흐름 없는 공기와 순환하지 않는 물에 손쓸 수 없이 척박하게 나조차도 살 수 없게 만들었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우울함을 곁에 두고 살았다. 종종 우울감이 느껴졌지만, 전반적으로 평온했고 가끔 행복하였기에 그런 성격인가보다 꽤 긴 시간을 살아왔다. 그 시기 동안 스트레스를 받으면 일상이 감정에 의해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사람들을 덜 만나고 오롯이 혼자되는 시간을 늘리면 다시 평소로 돌아가 살아냈다. 오히려 대학을 와서는 더 편안했다. 강의실과 집만을 반복하며 혼자 지내는 시간을 늘려 평온한 기분으로 지내왔다. 몇 년 새에 이렇게 기분이 계속해서 낮아질 것이라고 알았다면 미리 그때의 나를 돌보고 회피가 아닌 대안을 여러모로 찾아뒀을 것이다. 그러지 못한 나는 계획하기 어려운 일들이 벌어지고 바쁜 학기가 찾아오면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한번 무너지기 시작한 일상은 계획을 이행하기 더 어렵게 만들었고 그런 나의 일상이 다시 스트레스로 찾아와 악순환에 빠지게 되었다. 이전 학기만 해도 강의 시간 외에 늘 하던 공부는 물론이고 강의에 집중조차 하지 못하고 시험 기간에는 전날에서야 공부를 시작하기 일쑤였다. 강의에서 진행되는 조별 과제를 하며 상대방과 해야 하는 연락도 전화기를 꺼서 모든 연락을 차단한 통에 제대로 진행되기 어려웠다. 그렇게 내 인생이 무너지면서 나의 대학 생활이 엉망이 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줬다. 그렇게 일 년을 버티고 더는 이렇게 지내다 보면 모든 것을 포기할 것만 같은 마음에 휴학하면 안 되는 이유가 많은 상황에서도 이기적으로 휴학을 결정했다. 휴학하는 동안 자취방에서 모든 시간을 보냈고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 것에만 집중했다. 그렇게 일 년에 걸쳐 매우 느리게 내 상태를 회복했다. 그런데도 3학년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휴학을 해서 한 것이 혼자 시간 흘려보내기라는 게 휴학이 끝나가는 시점에서는 1년을 버린 걸까 봐 불안했다. 복학하고 해야 하는 것들을 계획하는 거로 불안함을 달랬다. 그렇게 준비하고 맞은 해가 2020년이었다. 생각하고 계획했던 모든 것들은 불안한 상황에 계속 일정들이 변경되고 취소되었다. 3학년부터 준비해서 발표하는 졸업논문을 몇 개월 만에 써야 하는 상황에서 불안한 시기는 바닥을 흔들었고 임시방편으로 보수공사를 한 나는 다시 무너지기 시작했고 휴학 전보다 더 빠르게 무너졌다. 그렇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왔다. 졸업논문을 어영부영 쓰고 나서도 회복할 수 없는 상태에서 나는 일상 곳곳에서 인생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그런 선택을 하는 내가 눈에 그려졌다. 모든 것을 둘째치고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라면 가고 싶었던 대학원은 선택 사안에 고려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전부터 대학원 진학 의사를 밝혔던 내가 선뜻 원서를 내지 못했던 것은 내가 대학원에서 연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가 아닌 그럴 수 있는 상태인지 몰라서였다. 포기하기는 싫은 마음에 교수님께 의논이라도 드려보자 하고 진행했던 지도교수님과 면담에서 대학원 관련 내용이 아닌 현재 상황을 처음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았다. 현재 상황을 상담센터에 말해줄 테니 상담을 받아보는 것은 어떻냐는 교수님에 말에 동의하고 그렇게 학교 상담센터에서 첫 상담을 받게 되었다.


  처음 상담센터를 방문하고 기본 동의서와 자살 방지 서약서를 쓰면서 기본적인 이야기를 나누면서 계속 눈물을 흘려서 쓰고 있는 마스크가 있어 다행이다 싶을 만큼 상담을 마치고 본 얼굴은 엉망이 되어있었다. 한주 정도 담당 상담사님이 정해지기 기다리면서 앞으로 10주 정도 꾸준하게 상담을 받을 수 있을지,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지금 상태와 상황을 타인에게 말하는 것이 도움이 되는지 수많은 고민을 하면서 걱정했다. 첫 상담을 하면서 어떤 말을 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상담사님의 자택 근무일에 상담하게 되어 화상으로 상담을 진행하게 되었다. 나는 카메라 각도를 올려잡고 고개를 자주 숙이면서 화면 속에서 얼굴을 가렸다. 상담사님이 던진 주제에 답을 하기까지 정적이 흐르는 시간이 부담스러웠다. 늘 누군가와 대화를 하게 되면 나의 이야기를 꺼내놓지 않고 상대의 이야기만을 듣는 나의 태도가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난 정적은 누군가에게 쉬이 털어놓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조금씩 꺼내놓게 했다. 그렇게 한두 번 정도 더 상담할 때까지 시야를 내리고 화면 속에서 도망치고 질문에 정적을 만들고 말하다 종종 눈물을 보이며 횡설수설하였다. 그 이후 상담에서부터 점차 달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상담하면서 한 번도 웃지 않았던 나는 상담이 지날수록 조금씩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상담을 받아본 적 없는 상황에서도 쉬는 기간이 길어지면 점자 회복되긴 했지만 오래 걸리고 더뎌서 늘 방학 기간 내내 우울하다가 조금 괜찮아진 상태로 다시 학기를 시작해서 또다시 상태가 나빠졌었다. 상담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그 속도도 빠르게 회복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현재 상담을 2번 정도 남겨두고 있는 상황에서 걱정이 생겨도 곧바로 우울감으로 연관되어 암울한 기분으로 빠져들어 가지 않는 것을 보면서 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상담 초반에는 내가 왜 우울함에 빠져 일 년을 보낸 것인지 어떤 요인이 나를 더욱더 힘들게 만드는 것인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많은 생각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지만 모든 것은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로 사소한 사건을 더 곱씹어 생각하기도 하고 별것 아니라며 넘겼던 것이 사실을 내가 바꿀 수 없는 스트레스이기에 받아들이기 위해 더 아무 일도 아닌 것으로 생각한 것이었다. 상담하면서 살아온 시기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고 여태 들었던 감정들에 관련된 일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나 혼자서 나에 대해 알아가려고 노력했던 긴 시간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볼 수 있었다. 미래를 그리는 것에 대해 잘하지 못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더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를 지경이던 나는 나중에 동물과 함께 사는 삶을 그린다는 것을 알았고 그것도 내 인생의 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상담사님과의 대화중에서 느꼈다. 또한 한 해 동안 힘들었던 것에 대해 긴 시간 동안 내가 어떤 것에서 스트레스를 받는지 어떤 상태였는지 내가 하는 말속에서 찾아 알려주었다. 앞으로 대학원에 가서 지내면서 어떻게 스트레스를 관리하며 지내야 할지 방향을 정할 수 있었다. 나는 내가 대학원을 진학하는 것에 있어 어쩌면 취업이나 이후 진로에 대해 명확하게 그려지는 것이 없어 선택한 것은 아닌지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내가 얼마나 전공 분야 연구에 관심 있는지 몰랐다. 다만 내가 전공 내용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런 것이 타인의 눈에도 보일지 몰랐는데 상담사님께서 내가 관련 분야에 관해 설명할 때 많이 행복해한다는 것을 말해줘서 조금 더 나의 앞으로 당장 해야 하는 목표에 확신이 생길 수 있었다.


  일상에 있어 상담을 받기 전과 후가 많이 달라졌다. 먼저 감정의 회복이 변화로 눈에 보일 만큼 빠르게 일어났다. 힘들면 가장 쉽게 놓던 삶이 다시 규칙적으로 변했다. 힘들어지면 방 청소를 미루고 사소한 집안일을 미루고 수면 패턴이 엉망이 되고 식습관도 불규칙적으로 변해간다. 집안에서 연락을 최대한 받지 않고 해야 하는 일에 대해 계속해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기한을 얼마 남겨두기 전까지 집중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고통 받는다. 그렇게 망가진 일상이 다시 스트레스로 돌아와 계속해서 악화하였다. 상담을 받고 시간이 흐르면서 해야 하는 일에 기한이 급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집중하는 것을 볼 수 있었고 책이나 영상들도 새로운 내용을 볼 때 집중을 못 해서 보지 못하여 다음에 보려고 만들어놓은 목록들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사실을 매번 상담을 시작할 때 일주일 동안 어땠냐는 질문을 받으면서 느낄 수 있었고 다시 일상을 회복하면서 규칙적인 생활 방식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사소한 것을 미루면서 그 자체로 스트레스를 받던 것이 사라지니까 당연하게 드는 걱정을 감정에 빠져 지나치게 생각하지 않고 필요한 만큼 고민하고 대안을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돌던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었다.


  꽤 오랜 세월 동안 낮게 자리 잡은 평균 기분이 몇 번의 상담으로 한 번에 좋아지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기분이 더 낮아지지 않게 기분 그래프의 변곡점을 찍은 것 같다. 이번 상담이 끝나고 계속 이런 기울기로 기분이 상승하지 않을 수 있다. 다시 회복한 일상에서 큰일이 생겨 다시 감당하기 어려운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겠지만 그런데도 지금부터 걱정이 되지는 않는다. 이전까지 상담을 시도하지 못한 순간에는 고민이 있거나 힘든 일이 있어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어색했다. 누군가의 시간을 내 고민으로 채운다는 것이 상대에게 힘든 일이니까 나도 원인을 모를 고민을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 상담을 받게 되면서 그런 상황일 때 주변과 조금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나쁘지 않다는 것과 꼭 주변인이 아니더라도 상담 기관에 도움을 받아 내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봐줄 누군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 방도를 모색할 수 있다는 경험을 하였다.


  제주에는 삼다도라고 부를 만큼 바람이 많이 분다. 그런 바람에 건물이 무너지기도 하고 밭에 심어놓은 농작물이 상하기도 한다. 그를 위해 쌓는 것이 돌담이다. 돌담은 너무 높지 않아 시야를 방해하지 않아 주변 환경을 둘러볼 수 있게 해준다. 또한 돌덩이들 사이사이를 메우지 않고 빈틈을 남겨두어 바람이 흐를 수 있게 두어서 강한 바람에도 잘 쓰러지지는 않지만 직접적으로 건물이나 농작물에 강한 바람을 맞지 않게 해준다. 나는 이번 상담을 통해 알았다. 앞으로 인생에서 다시 불지 모를 바람에 단단한 벽이 아닌 돌담을 세워 강한 바람을 부수어 약하게 만들고 길을 터서 흘려보낼 수 있으며 약해진 바람에 점점 파도도 잠재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상담은 그 돌담을 채우는 돌덩이를 제공해줄 수 있으며 또한 균형이 깨져 무너지는 건물의 보강 기둥이 되어줄 것이다. 무게를 분산시켜줘서 쓰러지기 전까지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그렇게 번 시간으로 조금씩 보강공사를 해나가면 된다. 그렇게 외부에 세워진 기둥이 어쩌면 높은 천장을 자랑하는 고딕 건축물의 외부 구조물과 같이 그 건물에 필요한 존재일 수 있다. 자신만의 다양한 형태와 방식으로 지을 건물에 간혹 불안해진 균형을 잡기 위해 상담을 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난 이번 상담을 통해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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