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학년도 2회_ 은상] 고모와 다시 만날 그 날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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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와 다시 만날 그 날을 기다리며
나는 내가 이 정도로 망가지고 미쳐갈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하루하루 매일이 지옥 같고 단 하루도 ‘자살’을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심지어 시도도 했다. 하지만 삶에 미련이 조금 남아서인지, 아니면 죽는 순간이 무서워서인지 막상 죽으려고 하면 실패를 거듭했다. 나는 이런 내가 바보 같고 싫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내가 왜 죽고 싶은 마음만 있고 죽지를 않는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난 죽어가면서 느끼는 고통이 두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삶도 고통 못지않게 두렵고 힘들었다.
죽음을 원하는 이 생각은 사실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수능이 끝난 직후에도 종종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땐 잠시 드는 생각에 불과했다. 그런데 6월 이후부터 나는 매일을 똑같이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시도를 했다. 그리고 실패하는 이 과정을 수도 없이 반복했다.
4월 말, 나는 1학년 1학기 기말 시험에 몰두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가 오늘 아침 얼굴은 씻었는지, 밥은 먹었는지 까먹을 정도로 온 신경이 기말 시험에 가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학부제인 1학년 성적이 2학년 학과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 뿐만 아니라 장학금, 기숙사 등 모든 문제가 학점에 달려 있었기 때문에 나는 뒤통수의 머리카락이 뽑힐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다른 일은 전혀 생각이 안 날 정도로 성적에만 집중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로부터 충격적인 연락을 받게 된다.
5월 1일, 모처럼 있는 강의가 없는 날에, 10시 쯤 일어나서 공부하기로 하고 나는 4일 간 쌓여 있던 피로를 풀고 있었다. 그런 내 단잠을 깨운 엄마에게 오전 7시에 전화가 온다.
“○○아, 빨리 삼성병원 가서 할머니 모시고 와.”
나는 뜬금없는 엄마의 말에 졸린 목소리로 갑자기 왜 그러냐고 짜증을 냈다. 그러던 내가 찬물이라도 맞은 냥 정신이 번쩍 들었다.
“빨리! 오늘, 고모 시한부 판정 받으셨어...”
나는 순간 멍하니 있었다. 내가 들은 말이 무슨 말인지, 이게 현실인지 내 꿈인지 잠시 생각했다. 엄마의 재촉에 그제야 나는 바로 할머니께서 계신 삼성병원에 갔다.
그 날, 할머니께서는 엄마와 얘기를 나누면서도, 다른 가족들과 통화를 하면서도 계속 우셨다. 처음이었다. 할머니께서 우시는 모습을 본 순간이 그 날이 처음이었다. 엄마와 동생이 할머니를 위로해드리며 함께 울었다. 하지만 난 그 때 울지 못했다.
느리게 흘렀으면 좋았을 시간이 빠르게 흘러, 6월 중순이 다 지나갔다. 6월 19일, 오전 6시 누군가의 말소리에 잠이 깼다. 자세히 들어보니, 안방에 있는 엄마가 울고 계신 소리였다. 그 순간, 비몽사몽한 나는 그 이유를 단번에 깨달았다.
‘고모가 돌아가셨구나....’
나는 충격을 받았지만 이를 드러내고 싶지 않아 허벅지를 꼬집으며 꾹 참고 장례식에 갈 준비를 했다. 동생 역시 엄마의 얘기를 듣고 마구 울었다.
우리는 기차에서까지 아무 말 없다가 장례식에 도착해서 고모의 영정 사진을 보자마자, 눈물을 쏟아냈다. 나 역시 고모의 사진을 보고 참고 있던 눈물을 화장실에서 몰래 흘렸다. 세수를 하면서도 고모와의 어렸을 때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함께 영화를 보던 일, 고모께서 내게 선물을 줬던 일 모두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장례식에 오는 사람들 모두 고모를 보자마자 울고 그런 사람들을 보며 할머니께서는 계속 우셨다. 1분 단위로 펑펑 우셔서 지치시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고모께서 돌아가신지 3일 째 되던 날 고모의 발인식을 했다. 내가 큰 조카였기 때문에 고모의 영정 사진을 들고 화장터까지 갔다. 가족들 모두 고모의 관에 손을 올리며 고모를 보내주었다. 나는 그동안 꾹 참았던 눈물을 여기서 보이고 말았다. 고모께서 내게 그동안 잘해주던 일들이 모두 떠올랐고 함께 했던 일이 생각나면서 너무나도 미안했다. 이런 내 자신이 너무 싫었다.
그렇게 고모를 보내드리고 나는 한동안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렸다. 가족들 앞에서는 아닌 척 하지만 사실 난 하루를 사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다. 고모가 계속 생각나고 꿈에 매일 나오고 괴로웠다. 그래서 정신심리상담 병원에 가서 치료도 받고 약도 처방받았지만 나아지기는커녕 매우 차가운 의료진의 태도에 오히려 상처를 받았다. 나는 그 후로도 사는 게 너무 힘들고 고모가 계속 보고 싶고 좋지 않은 내 성적과 암담해 보이는 내 미래 때문에 몇 번이고 자살 시도를 했다. 그러나 수십 번을 시도했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그러다가 11월 쯤 학교 에브리타임 게시판에서 심리 상담을 해 준다는 정보를 보게 되었다. 우울증으로 너무 지쳐있던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상담을 신청했다. 도움을 받는다기보다 털어놓고 싶어서 상담이 하고 싶었다. 특히나 병원은 돈 부담도 되고 치료가 되지 않고 상처만 받는 곳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오히려 상담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나는 친구조차 없었기 때문에 누구든지 필요했다.
상담을 하던 첫 날과 두 번째 날은 울면서 상담을 받았다. 상담 선생님께서 고모와 있었던 일들을 모두 말해보라고 하셔서 나는 그걸 말하면서 계속 떠오르는 고모의 모습에 참고 있던 눈물이 폭발했다. 나는 그 때 고모와의 일을 말하면서도 내가 과연 이 고통 속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이 일을 털어놓고 위로를 받았을 뿐인데 왠지 모르게 희망이 생겼다. 그리고 고모께서 날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까 정말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었다. 마침 시험 기간이던 11월이어서 난 성적이 안 좋았던 저번 학기를 만회하기 위해 이번 학기에 최선을 다했다. 전 학기와는 다르게 교재도 여러 번 읽고 과제도 몇 번씩이나 검토하고 시험 기간에는 교재의 내용을 통으로 외울 때까지 공부했다. 아직 2학기 성적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한 내 자신에게는 후회가 없었다. 2학기 종강까지 하고 나서는 원래 하던 공부인 토익 공부와 한국어 능력 시험공부에 다시 집중했다. 이렇게 내가 내 일에 집중을 하지 않으면 다시 고모 생각이 많이 나고 힘들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지금도 최대한 힘든 이 순간을 잊기 위해, 딴 생각이 나지 않도록 내 일에 집중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고모께서 돌아가시고 힘든 감정이 너무 커서 공부에도 방해가 되고 성적조차 잘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상담 후에 마음의 안정이 조금 찾아오면서도, 물론 고모의 생각이 여전히 많이 나긴 하지만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이 생긴 느낌이 들었다.
또한 상담 선생님께서 내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심리의 면에서 정말 많은 위로와 약간의 해결책으로 도움을 주셨기 때문에 내가 고모와의 추억을 끄집어낸 이후로 마음의 정리를 잘 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난 여전히 괴로워하고 심하게 우울증에 계속 시달렸을 지도 모른다.
난 상담 덕분에 역량 중에 ‘실천’에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마음의 정리를 할 수 있었고 고모께서 날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목표를 갖고 다시 추구하게 되었고 자기 주도적으로 계획을 세워서 뭐든 하려고 하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한창 힘들 때는 세운 목표도 다 사라지는 듯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괴로웠던 감정을 덜고 나니까 내 목표가 다시 보이고 계획한 것들이 생각났다. 내가 나의 슬픔에 취해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면 남은 가족들이 더 힘들어지고 내 일에도 차질이 생긴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 또한 고모께서 원한 일이 아닐 것이고 내가 계속 우울해하며 살아간다면 고모께서 나보다 더 괴로워하시고 실망하실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최소한 고모에게만큼은 정말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슬픔에 미친 내 자신이 아니라 공부와 열정에 미친 내 자신을 말이다.
솔직히 난 다른 사람들 중에도 나와 같은 경우를 겪는 친구들이 꽤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다른 힘든 일로 인한 고통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고통만큼 큰 고통은 없다고 생각한다. 가슴이 찢어지고 타들어가고 머릿속의 기억을 모조리 지워버리고 미쳐버릴 것 같은 고통은 정말이지, 어쩌면 감당하기 힘들 수 있다. 난 이러한 이별의 고통을 느끼는 친구들에게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지금 많이 힘들지? 알아. 어떠한 말로도 위로가 안 되고 슬프다는 거. 어쩌면 남은 가족들이 소용이 없을 정도로 살고 싶지 않은 생각이 들 수도 있어. 하지만 그럴 때마다 떠나보낸 그 사람을 기억하고 생각해봐. 그 사람은 네가 우울해하고 힘들어하는 것을 좋아할까? 네가 우울해하면 그 사람은 오히려 더 힘들고 미안해하고 자책할 거야. 네가 네 일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면서 행복해하기를 바랄 거야. 그 생각을 하면서 조금만 더 버텨보자. 알아. 버티기 힘든 거. 너무 고통스럽고 지쳐 있다는 것도 알아. 혹시 킬미힐미라는 드라마 본 적 있니? 거기서 이런 대사가 나와. ‘그렇게 죽고 싶으면 다음 날에, 그 다음 날에 죽고 싶으면 그 다음 다음 날에 죽어도 안 늦어. 그렇게 죽기를 미루다보면 언젠가는 살기를 잘했다는 날이 반드시 올 거야. 너는 죽고 싶다고 했지만 나한테는 살겠다는 말로 들리거든. 너는 킬미를 외쳤지만 나한테는 힐미라는 말로 들려.’ 이 말을 난 너에게도 전하고 싶어. 혹시라도 죽고 싶을 때마다 한번 미뤄봐. 나도 죽고 싶은 생각이 들 때마다 죽기까지의 고통이 두려워서 다음 날로 계속 미뤘는걸? 그러다가 지금 이렇게 멀쩡하게 잘 살고 있잖아. 너도 언젠가는 이렇게 살고 있기를 잘했다는 순간이 꼭 올 거야. 한 번만 마음 편안하게 살아보자.”
사람은 누구나 극도로 힘들 때 ‘자살’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자살’의 반대말이 바로 ‘살자’라는 말이 아닌가? 자살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정말 죽고 싶은 게 아닐지 모른다. 현재의 삶에서의 고통이 무척 힘들고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일 뿐, 정말 잘 살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정말 잘 살고 싶기 때문에 현재에 대한 만족감이 덜하고 현재가 힘들게만 느껴져서 ‘자살’을 생각한 것일 수도 있다.
나 역시 고모를 보내고 공부에 집중도 못하고 성적도 안 나오고 날마다 괴로워할 만큼 힘든 시간을 보냈다. 충동적으로 자살 생각을 자주 했으며 시도도 못하는 내 자신이 또 싫어지는 순간을 반복하며 살았다. 하지만 상담 이후에 고모를 내 마음 속에서 편안하게 보낼 수 있게 되었고 다시 내가 계획한 것에 집중할 수 있었다. 어쩌면 우울증에 시달린 채로 자살을 감행했을 수도 있는 내게 찾아온 상담은 특별한 기회였다. 이 기회를 삼아 나는 나의 목표에 최선을 다하고 실패하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늘 노력하는 모습을 유지해야겠다. 그리고 나중에 자랑스럽고 떳떳한 모습으로 고모를 마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