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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학년도 3회_ 장려상] 일기(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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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초등학교 선생님의 숙제로 매일 일기를 써오고 일기장 구석 한켠에 써 있는 선생님의 코멘트를 보고싶어서 열심히 일기를 썼던 경험이 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점차 일기장을 써오라는 숙제도 사라지고 일기장에 코멘트를 써주는 선생님도 사라졌다. 오히려 나의 일기를 부모님이 볼까봐 두려워하며 일기장을 숨기는 일이 다수였고 결국 나의 일을 기록하지 않은 채 흘러 보내는 날들이 더욱 많아졌다. 아주 어렸을 적 일기를 쓰기 싫어서 날짜와 날씨만 쓰고 ‘오늘 아무 일도 없었다.’라고 쓰곤 끝을 내었던 일기처럼 나의 하루는 그런 흔적조차 없이 내 마음 속에서 ‘오늘 아무 일도 없었다.’라고 글을 쓴 채 하루하루를 보냈다.


대학교에 들어오고 코로나는 나아질 기미가 없어 동기들과 선후배 간의 교류는 차단되었고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집안은 부모님의 다툼으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그래도 나는 매일 ‘오늘 아무 일도 없었다.’라며 내 마음 속 일기를 써버리고는 아무 일도 없는 척했다. 누군가가 말해주었다. 나는 참 밝고 긍정적인 사람 같아 보인다고.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그 말이 듣기 좋아서 나는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라는 입력 코드를 넣고 그 단어와 어울리는 행동을 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리고 그 ‘밝은 사람’이 버겁다고 느껴진 때에 나는 상담실을 찾았다. 부모님은 나에게 첫인상이 중요하다고 항상 가르쳐 주셨고 나의 평상시 ‘밝은 사람’을 유지하기 위해 당당하게 상담실을 찾았지만 처음 상담사님을 만났을 때 울어버렸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상담사님께 많이 죄송하고 감사하다. 상담을 진행하는 동안 초반에는 거의 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상담을 해야겠다 라고 생각했을 때 나는 나에게 병이 있다고 생각했다. 상담사님이 나에게 의사처럼 병명을 말해 주길 바랬다. 그 병명에 맞추어 행동해도 되겠다라는 핑계로 ‘밝은 사람’인 척하는 것을 관두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상담사님은 나에게 병명을 말씀해주시는 것이 아닌 나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하셨다. 나의 가족, 내가 싫어하는 기억, 나의 친구들 내 마음속으로만 생각했던 것을 토해내 듯 상담사님과 이야기하였다. 상담을 진행하면서 상담사님께 말씀을 드린다는 느낌보다는 또 다른 나에게 나의 이야기를 해주는 느낌이었다. ‘너는 그때 이런 느낌이었어. 나는 그때 이런 생각을 했어.’라고 나에게 말하며 복잡하고 ‘오늘 아무 일도 없었다.’로 끝났던 하루를 천천히 다시 생각해나갔다. ‘아무 일’을 이야기했고 ‘아무 일’이 나에게 어떻게 다가왔는지를 알게 되었을 때 왜 내가 우울하고 무기력했는지 알았다. 상담사님과 함께 이야기를 하면서 나의 일을 되돌아보는 법을 가르쳐주셨을 때 “유레카!(eureka)”를 외쳤다. 내가 우울했을 때 아무 이유 없이 화가 났고 슬펐던 것이 이유 없는 슬픔과 분노가 아니었음을 알았고, ‘생각보다 별일 아니구나.’라고 느꼈다. 나의 이야기를 상담사님과 풀어내고 나서는 이제 과거의 이야기가 아닌 미래의 “나”에 대한 이야기를 잔뜩 했다. 나와 적성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던 전공을 어떻게 공부하고 앞으로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밝은 척하는 사람이 아닌 정말로 밝은 사람이 되기 위해 행동을 바꾸었다. 더 이상 모든 사람에게 완벽한 사람이 아닌 나에게 충실한 사람이 되기 위해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나의 의견을 말하며 반항해보기도 하고 싫다는 일을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내 탓이 아닌 일에 대해 너무 많은 죄책감을 가지지 않으려 노력하였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상담을 하고 나서 제일 크게 느낀 것은 나를 격려하고 돌아보는 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외부에서 인정받고 칭찬을 얻는 것을 바란다. 나도 외부의 칭찬을 좋아하고 좋아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외부의 칭찬이 자신을 도와주는 것에는 한계가 있고 힘들다는 것을 느꼈고 상담사님과 함께 이야기한 10번의 시간은 나에게 일기를 쓰는 것과 같았다. 나의 감정과 경험을 말함으로서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반성하고 나서는 스스로 다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지금은 상담 기간이 끝나서 상담사님과 함께 일기를 쓰지는 못하지만 이젠 누군가의 코멘트를 얻기 위해서, 하루를 ‘아무 일도 없었다’로 끝내지 않기 위해서 사소한 일이라도 기록하고 읽어 보면서 ‘어, 별 것아니네.’,‘힘들었지만 너 잘했네.’라고 자신에게 격려하거나 ‘너가 잘 못한 것이 있네.’,‘다시 생각해보자.’라며 반성을 하기도 하면서 추진력을 얻고 있다.


자신의 과거가 보기 싫어서 외면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잊어버린 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이 있듯이 ‘나의 역사’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를 되돌아보고 격려를 하고 반성을 한다면 조금이나마 이유 없는 분노와 슬픔은 사라질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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