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학년도 4회_우수상] 나를 알아가는 시간
- 작성자박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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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상담을 신청한 건 2022년 3월이었다. 당시 나는 복학을 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한창 스트레스를 심하게 겪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코로나19 확진이 되었고, 격리되어있는 일주일동안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우울 증세가 심하다는 것을 알았다. 어릴 때부터도 자주 우울감에 빠지고 가라앉곤 했던지라 ‘나는 원래 기본적으로 우울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어쩌면 내 상태가 정상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울감이 심해져서 무기력함과 의욕 저하로까지 이어지니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고 있는 상태였다. 내가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노력하려는 마음이 생기지도 않았다. 자꾸만 문제를 회피하려는 느낌이 들어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던 참이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스스로 생각하는 의심에 그쳤고, 배경지식이 없으니 지금 내가 병원에 내원해야 하는 정도인지 그냥 자연스럽게 지나갈 문제인지도 판단이 서지 않았다. 내 상태에 대한 객관적인 진단과 전문가의 소견이 듣고 싶어서 교내 상담센터를 찾게 되었다.
처음 상담을 시작한 건 4월이었다. 첫날 내 상태가 궁금하다 말씀드리니 기본 기질 검사와 문장완성 검사를 하게 해 주셨다. 검사를 마치고 나서 나는 기질적으로 불안이 높은 사람이라는 걸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내게 지금 힘든 것이 무엇인지, 상담을 통해 기대하는 바가 무엇인지, 상담의 목표를 무엇으로 설정할지를 물어보셨다. 나는 문제 상황이 느껴지니 상담을 신청한 것이었고, 이것으로 내가 할 일은 다 했다고 생각했다. 상담을 통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나갈지는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것은 상담사분께서 알아서 해 주시는 것인 줄 알았는데 내게 물어보시니 너무 어려웠다. 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상담을 신청했다는 것을 그 자리에서 깨달았다.
나는 상담을 하러 가면 내 상태를 진단한 뒤, 내게 맞는 상담 방식이나 솔루션이 약 처방하듯 나오고, 나는 그저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상담은 결국 내담자가 하는 것이고, 내 생각보다 내담자가 훨씬 능동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깜깜한 미로 속에서 나아갈 열쇠가 내 손에 바로 주어지는 줄 알았는데, 상담을 통해 내가 열쇠를 찾는 것을 돕는 느낌이었다. 함께 헤매기도 하고, 지나온 길을 복기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병원에 가야 하는지, 내 상태가 어떤지 여쭤보자 상담사님은 웃으시며 “○○씨는 ‘나한테 문제가 있나?’하는 생각을 안 하면 될 것 같아요.” 라고 말씀하셨다. 대신 그 때의 내가 많이 불안하고, 초조하고, 주눅들어있던 상태였기 때문에 그것을 조금씩 이겨내는 것을 상담의 목표로 잡았다.
이미 내가 알고 있던 많은 이야기들을 했다. 가족들의 이야기, 학창시절에 공부했던 이야기, 내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친구들의 이야기, 한동안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 등이었다. 주로 내 감정과 생각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어떠한 일이 있었고 그 때 기분이 어땠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나아가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 등의 이야기를 했다. 잘 말한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었다. 상담할 때는 잘 기억이 안 났다가, 집에 와서 뒤늦게 생각이 정리되기도 했다. 상담을 하다보면 ‘맞아, 나는 이런 사람이었지’, ‘내가 이걸 잊고 있었네.’ 하는 것들을 하나 둘씩 알게 되었다. 내가 존경하는 분을 보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 내 신념이 무엇이었는지, 내 이상향이 무엇이었는지, 어떤 마음으로 공부를 했고 처음으로 연애를 할 때 했던 다짐이 무엇이었는지 등, 내가 했던 생각들을 떠올리며 지금의 나를 비추어볼 수 있었다.
내가 흔들리고 힘들어할 때 그것을 풀 열쇠는 결국 나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상담사님과 이야기하다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떠한 결정을 내릴 때 가장 후회가 없는지를 서서히 알아가게 되었다. 상담사님은 내게 어떠한 답을 준 적이 없으셨다. 내가 이야기를 하면, “그때 ○○씨 기분은 어땠어요?”,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요?”, “어떤 생각이 들었어요?” 등의 질문을 하며 내 이야기를 끌어내셨을 뿐이다. 그 질문을 따라 내 마음과 생각을 이야기하다보면 마음이 정리되곤 했다. 말을 하다 보면 길이 보이는데, 그 길은 결국 내 안에서 나온 것이다. 이렇게 말을 이끌어내는 것이 참 신기했다.
내 속에, 내가 잊고 있던 것들이 많고 연결 짓지 못하던 것들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안개 속에 잠겨있던 조각들을 꺼내어 선명해지도록 들여다보고, 그것들을 읽고 이어나가며 조각을 맞추는 느낌이었다. 나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던 시간이었다. 이야기를 이끌어내며 상담사님은 내가 더 생각을 하도록 질문을 던져 주셨는데, 사실 그 역할을 내 스스로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상담에 익숙해지며 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생각을 이끌어내는 연습을 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스스로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방법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상담을 통해 나를 알아갈 수 있었고, 잊고 있던 기억이 많이 떠올랐다. 내가 어떤 마음과 태도로 삶을 살아나가는 사람이었는지, 나를 아끼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도 다시 기억하게 되었다. 가족들과 친구들, 선생님 등 내 곁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상담과 더불어 주변의 긍정적인 상황들이 더해져 차츰 잊고 있던 자존감을 되찾았다. 조금씩 건강한 마음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스트레스에 많이 취약한 사람이고, 내 회복 탄력성이 그리 좋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상담을 통해 금방 이겨낼 수 있었지만 나중에 또 이렇게 힘든 상황이 온다면 이겨내는 데에 얼마의 시간이 소요될지 장담할 수 없다. 그래도 이번 경험을 통해 이전보다는 나은 대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상담을 통해 얻은 것이 있는데, 첫 번째는 힘든 일이 닥쳤을 때 어떻게 상황을 타개해야 하는지 방법을 알게 된 것이다. 위에서 썼듯이, 내가 힘들 때는 과거를 들여다보고 잊고 있던 나를 다시 살려보면 길이 보인다는 것을 알았다.
두 번째로는 불안을 관리할 줄 알게 되었다. 불안에 대한 것은 기질적인 이야기와 연관된다. 항상 불안과 걱정이 많았고, 어릴 때부터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면 어떡할까’ 라는 생각에 행여나 흠이 잡힐까 말을 아끼고 소심해졌었다. 걱정과 불안이 완벽주의적인 성향과 연관되니, 조금이라도 실수를 저지를까 항상 신경을 과도하게 쓰곤 한다. 그렇다보니 사람들을 대할 때 굉장히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항상 초조해하고 불안해하곤 했다. 그런데 기질검사를 하고 나서 타고난 기질 자체가 불안이 높은 편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사람을 대할 때마다 항상 과도하게 불안하고 초조했는데, 그 상황을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구나.’ 하며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내 불안은 좀 과한 편이니 이 상황의 본질을 들여다보면 이렇게까지 불안해야 하는 일이 아닐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하며 불안을 관리할 수도 있게 되었다.
상담을 하며 대인관계에 소극적인 것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했는데, 그 원인은 결국 대인관계에 대한 불안에 있었다. 미움 받지 않을까, 하는 불안함과 초조함이 가장 큰 기반이었다. 상담사님과 말을 하다 보면 내 불안이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나의 과도한 생각의 산물임을 깨닫게 되기도 했다. 내가 한 이야기 속의 사람들을 이야기하며 “○○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왜 미움을 받을 거라고 생각해요? ○○씨가 어떻게 행동해도 다른 사람들이 싫어하지 않을 거예요.” 라는 말씀을 자주 해 주셨고, 나도 내 스스로를 내가 불편해하던 상황에 자주 노출시켜보았다. 먼저 말을 걸고, 먼저 손을 내밀고, 다른 이들에게 긍정적인 반응이 되돌아오는 것을 보며 자신감도 다시 찾아갈 수 있었다.
세 번째로는 스트레스를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 스트레스 관리의 영역은 해소와도 연관이 있다. 나는 20년 동안 스트레스 푸는 법을 모르고 살아왔다. 학생 때까지는 공부가 최우선 과제였으니 감정과 욕구 등 모든 것을 등한시하며 지내왔는데, 성인이 되고 나니 그게 큰 걸림돌이 되기 시작했다. 놀아본 적이 없으니 놀 줄을 모르고, 스트레스를 잔뜩 받아 힘든데 해소하는 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것에 익숙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을 알아채는 법도 몰랐다.
그런데 상담을 통해 나를 들여다보며, 내가 원하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루틴이 생겼다.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가만히 집중을 해보면 ‘지금은 떡볶이를 먹어야겠다.’,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불러야겠다.’, 혹은 ‘드라이브를 갈까?’ 하는 마음을 찾게 된다. 내 욕구에 귀를 기울이고, 그에 충실하게 행동하는 법을 배웠다.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과 상태에 따라, 이건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 것인지를 어렴풋하게 알게 되었다. 그동안은 하고 싶은 걸 참고 절제하는 것만이 능사인 줄 알고 살아왔는데, 하고 싶은 대로 움직이기도 해야 한다는 당연한 이야기를 늦게 깨달았다.
상담을 하고 나를 들여다보며 값진 것들을 알게 되었다. 지금 나는, 내가 가장 빛났던 때와 견줄 정도로 안정적인 상태이다. 자존감과 자신감도 꽤나 상승했고, 과거의 상처에 갇혀있던 상태를 드디어 좀 탈피하게 되었다. 대학에 온 이후 과거에 나에 대한 자기연민도 굉장히 심했다. 내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어느 선생님께 들었던 ‘자기연민은 굉장히 위험하다’는 말이 정말 무겁게 들렸었는데, 그런 상태에서도 빠져나왔다. 과거의 ‘나’들을 안쓰러워하고 불쌍해하는 게 아니라, 대단하고 장하게 여기며 뿌듯해하기로 했다. 이제야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구본신참이 가능해졌다.
열심히 노력하던 과거의 나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자꾸만 그때로 돌아가려 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의 빛났던 나를 자랑스러워하고, 그 힘을 미래를 준비하는 현재에 쓸 수 있게 되었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변화이다.
과거의 나를 객관적으로 마주할 수도 있게 되었다. 학생 때는 한 해가 다르게 성장해나가는 내가 자랑스럽고 기대되었었다. 모든 것을 참고 묵묵히 노력하던 고등학생 때의 내가 불쌍했고, 그때의 나에게 열등감과 죄책감이 함께 있었다. 눈에 띄는 성취를 가져오던 그때가 그립기도 했다. 그래서 그때가 가장 이상적인 상태였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눈을 가리며 그때의 상태로 돌아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지만은 않았다는 걸 안다. 학생 때의 나는 정말 빛나고 멋있었다. 마음먹은 것은 다 해내고, 정말 스스로를 감동시킬 정도의 노력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속으로는 나를 많이 갉아먹고 있었다. 매일같이 울음을 삼키고, 우울감도 심했고 불안해하며 눈치도 자주 보았다. 지금은 그 상태가 최선이 아님을 알고, 그때로부터도 더 성장할 여지가 있음을 안다.
앞으로도 더 나아가야지. 이제야 다시 성장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과거로부터 좋았던 것은 취하고, 고칠 것은 고치고, 새로운 것을 배우면서 말이다. 고등학생 때 더 좋은 나를 만들기 위해 그러했듯이, 신경을 곤두세우며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좋은 것을 흡수하고, 나를 돌이켜보자. 잊고 있던 배움의 태도를 다시 기억하게 됐으니까, 나를 다시 발전시키는 일만이 남았다. 열린 마음으로 하나하나 해나가다 보면 다시 빛날 때가 올 것이란 확신이 생겼다. 잘 살자. 나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나는 큰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