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학년도 4회_장려상] 힘
- 작성자박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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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2022년 강원대학교에 입학한 신입생이었습니다. 22학번이지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가 뒤늦게 더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대학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로 하고 2년이 넘는 시간동안 매진했지만, 3번의 시험을 겪는 동안 매번 떨어지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떨어지고 나니 남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뒤늦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걸 찾아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온 대학이지만, 정작 제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뭔지는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으니 마냥 답답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제가 공무원 시험을 그만두고 대학에 온 것 자체를 못미더워하셨습니다. 오랫동안 꾸준히 한 공무원 시험조차 해내지 못하면서, 대학에 가서 뭘 배울 수 있는지에 대해 부정적이셨어요. 제가 뭘 하고 싶은지 찾지 못하면서, 부모님께는 죄송한 마음과 동시에 숨이 막힌다는 이중적인 감정이 든다는 것에 많이 지쳤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방향을 못 잡고 지루하고 의미 없는 대학생활을 하던 중, 먼저 강원대학교에 다니면서 학생상담센터에서 상담을 받았던 친구가 제게 상담을 권해주었습니다. 고등학생 때도 상담을 받았던 경험이 있어서 크게 상담에 대한 거부감은 없는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회의적인 기분은 들었습니다. 누군가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의지가 되는 일은 맞지만, 결국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 상대적으로 상담을 필요로 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저는 그렇게 힘든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상담을 신청할 정도로 힘든 건지, 내가 이렇게 힘들어 할 이유가 있는지에 대해 많이 고민했습니다. 그래도 지금보다는 더 나아지고 싶다, 라는 생각에 상담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상담을 하러 갔을 때는 솔직히 괜히 신청했나,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공무원 시험을 2년 넘게 준비했던 만큼 인간관계에 많은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고등학생 때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들은 각자 대학생활을 하느라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취업 준비를 하고, 다양한 친구들과 어울리는 친구들을 보며 나 혼자 고립되고 뒤처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백 번씩 했었습니다. 비교한다는 게 나 자신을 갉아먹는 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던 것 같아요. 3학년인 친구들과 다르게 1학년인 내가 초라해보였고, 그런 생각은 저를 한없이 작아보이게 했습니다. 같은 학년인 학우들은 다 저보다 어렸기 때문에 더더욱 누군가와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것 역시 자신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새로운 상담사 선생님을 만나서 제 마음속 이야기를 털어놓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처음에 상담사 선생님께 제 이야기를 하는 건 힘들었어요. 그래도 선생님께서 천천히 기다려주신 덕분에 지금의 제가 괜찮아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상담 초반에 제가 상담 받길 원했던 건 진로와 가족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런 부분에 대해 먼저 제가 뭘 좋아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함께 찾아주려고 노력하셨습니다. 대화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제 상태와 제 적성에 대해 검사를 하고, 구체적으로 여러 방법을 제시해주셨어요. 뭘 할 때 즐거운지, 평소에 어떻게 스트레스를 푸는지 물어보셨고, 선생님의 질문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글이었습니다. 글을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게 잘 쓴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렸을 때부터 글을 읽고 쓰는 걸 좋아해서 글을 통해 스트레스를 풀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때는 막연하게 글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글과 관련된 직업은 안정적이지 않아서 부모님이 싫어하셨고, 저도 자연스럽게 안정성을 추구하게 되면서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선생님께 하니, 선생님께서는 조금 고민하시다가 국가에 소속되어 기사를 쓰는 기자처럼, 안정적이면서 좋아하는 글을 쓰는 일도 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처음에는 조금 멍했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세상에는 많은 직업이 있으니, 글을 쓰면서 안정적인 직업은 당연히 있을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던 저는 어쩌면 뭔가를 시작하는 게 무섭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하지 못할 이유들만 찾고 있었으니까요.
선생님께서는 하루에 있었던 일들을 뭐든 좋으니 적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방법은 제게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기도 했고, 나중에 돌아봤을 때 아, 내가 이 때보다 이만큼 괜찮아졌구나. 라고 생각하게 해주는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또, 제가 좋아하는 글쓰기를 습관처럼 반복하며 글을 놓지 않게 해주기도 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제안해주신 이 방법은 요즘도 꾸준히 하고 있어요. 바쁜 날은 가끔 까먹지만, 요즘도 하루에 있는 중요한 일들을 블로그에 기록합니다. 이렇게 쌓인 순간들이 힘든 순간을 이겨내게 해주는 힘이 되어주더라고요. 진로에 대한 막혀있던 생각을 풀고 포기했던 소중함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가족들에 대한 부분은 절대 나아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부분입니다. 절 평생 피곤하게 만들었던 본질적인 예민함과 불신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가족들과 감정의 골이 많이 깊어져있었어요. 동생들이 많고, 그런 환경에서 부모님께서는 은연중에 제게 첫째로서의 역할을 해주길 바라셨습니다. 이런 부분 때문에 평생을 기대 받으며 살아왔고,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떠올리기만 해도 숨이 막히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대학에 와서 가족들과 떨어져있으면서 여유로워진 부분도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상담을 통해 부모님의 생각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제가 부모님을 떠올리면 느끼는 감정들을 말하면, 선생님께서는 공감해주시되 부모님께서는 이런 마음이 아니셨을까, 라고 조심스럽게 이해시켜주셨습니다. 처음에는 그래도 이해가 안 됐던 것 같아요. 그래도 상담을 계속 하며 그 이야기를 제 입으로 하니 어느 순간 부모님 이야기를 하고, 부모님을 떠올리는 게 마냥 괴롭지만은 않다고 느껴졌습니다. 절대 괜찮아질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어느 순간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는 게 너무 신기했어요. 분명 부모님께서 제게 하는 모든 말들이 아프고 부담스럽기만 했는데, 거리를 갖고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하니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가족들만 생각하면 왜 이렇게 답답하고 마음이 아픈지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는데, 선생님께서는 가족들을 사랑하면서 원망하는 제 마음을 짚어주셨어요. 부모님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자연스럽게 관계 개선으로 이어졌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에 대한 한결 여유로워진 생각들이 대화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집에 갔을 때 부모님과 솔직하게 마음을 털어놓은 대화를 여러 번 했고, 정말 신기하게도 부모님 입장을 이해하며 말하니 부모님께서도 제 입장에서 이야기해주셨어요. 이렇게 몇 달에 걸쳐 천천히 관계가 나아지더라고요. 원래는 연락도 자주 하지 않고, 최대한 피할 수 있으면 부모님과의 자리를 피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부모님과 매일 매일 전화도 하고, 적어도 한 달에 한번은 본가에 내려가고 있어요. 이런 변화가 저도 가끔 안 믿길 만큼, 요즘은 부모님과 싸우지도 않고 화목하게 잘 지내고 있어요.
힘든 순간들은 여러 번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모습을 바꿔서 찾아올 거란 걸 알고 있습니다. 상담을 처음 하게 된 건 진로와 가족 문제였지만, 이런 문제들이 어느 정도 해결된 이후에는 대학생활과 인간관계, 남자친구와의 이야기를 상담 받았던 것처럼 말이에요. 그 때의 저는 그 사실이 막연하게 두렵고 무서웠던 것 같아요. 지금 힘든 것도 이겨낼 힘이 없는데, 앞으로 다가올 것들은 더 크게 느껴졌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의 저는 적어도 앞으로 다가올 일들이 마냥 무섭지만은 않습니다. 저는 상담을 통해 힘을 얻은 게 아니라, 내게 힘든 일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걸 깨달은 것 같아요. 저 자신을 조금 더 여유롭게 볼 수 있는 기회와 많은 깨달음을 주신 선생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