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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학년도 5회_ 최우수상] 내 안의 답을 찾아 떠나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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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잠수부였다. 나를 미워하는 마음과 가족 문제라는 추를 가지고 끝없이 아래로 가라앉았다. 한부모 가정에서 자랐지만. 나는 부족하지 않게 아니 넘치게 집안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불안이라는 그림자가 항상 뒤따라왔고, 동시에 나는 내가 너무 싫었다. 흔히 이야기하는 ‘Love myself’를 도저히 할 수 없었다. 기분과 상황에 따라 돌변하는 엄마와 반복되는 언어폭력은 나를 링 위의 샌드백으로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아파하면서도 내가 느끼는 불안과 삶의 고통이 정확히 무엇인지 몰랐다. 나는 왜 항상 불안할까? 왜 나를 사랑하지 못할까? 왜 칭찬이 거북할까? 이유 모를 마음의 짐과 생각들은 나를 점점 더 가라앉게 했다.

2023년 3월 어느 날, 똑같은 엄마와의 다툼과 폭언으로 이제는 다 그만두고 싶어지는 순간이 왔다. 스스로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아 학교 커뮤니티에서 언젠가 보았던 상담센터가 떠올랐고, 그 길로 신청하게 되었다. 상담으로 환경의 변화를 일으킬 수는 없기에 큰 기대는 없었다. 그냥 숨 쉬고 싶었다. 그래서 “큰 기대하지 말자” 스스로 되뇌며 들어갔다.


상담은 내가 오로지 나의 상황에 대한 정보 전달자이기 때문에, 아픈 상처를 다시 들추어낸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늘 눈이 부은 채로 젖은 휴짓조각과 함께 상담실을 나서곤 했다. 정리해보자면, 10여 차례의 상담에서 나는 과거의 나를 관찰했고, 그로 인해 지금의 내 감정과 불안, 삶의 태도 등의 원인을 알아낼 수 있었다. 이를 초기, 중기, 말기로 나눠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먼저. 상담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하며 동화의 나오는 수정 구슬처럼 어렸을 때의 나를 들여다보았다. 처음 내가 마주한 것은 언젠가 엄마에게 버려지지 않을까? 라는 불안이 가득 찬 어린아이였다. 왜냐하면 화가 난 엄마의 습관은 아빠 집으로 가라 혹은 내 집에서 나가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어린 나는 이를 협박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버려지고 싶지 않았고, 더 완벽해지고 싶었고 그러지 못한 나를 자책하고 싫어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나에게 너무 미안했고 다 내 잘못 때문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분이 어떠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나는 나를 안아주고 싶다고 대답했다. 나를 안아주는 순간 나는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고 삶의 문제에 대한 답은 내 안에 있었다. 그렇게 상담 중반기에 들어갔다.

상담 중반기에 들어서는 상담실 가는 발걸음이 좀 더 가볍고 즐거웠다. 평소에는 생각 없이 지나간 감정들과 나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고, 이를 기억해서 상담을 진행했다. 선생님은 내가 왜 그 감정을 가졌는지 직접적으로 말해주시는 않았지만, 나에게 왜 그랬을까요? 물어주셨고 어떤 말을 하든 항상 나를 응원해주셨다. 이를 통해 내가 나에 대한 기준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대화를 나눠보니 타인이라고 생각했을 때 내가 가지고 이뤄낸 것은 꽤 괜찮은 조건이었다. 내 생각보다 나는 좀 더 괜찮은 사람이었다는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단지 나를 보는 기준이 높아 칭찬하지 않고 나를 계속 채찍질한 것이 너무 미안해졌다. 또한 엄마에게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정서적 독립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성인으로 나를 책임질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아직 보호받아야 할 존재라는 생각이 나를 독립에서 더 멀게 만들었다. 그리고 보호받지 못할 미래를 불안하게 했다. 무엇이 중요한지 내가 왜 그러한 감정을 갖는지를 조금씩 알게 된 것이다. 늘 타인의 힘든 이야기를 들으면 속상하고 몸이 아팠는데, 왜 그럴까에 대해 물었던 날도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선생님은 사람 마다 감정을 담는 그릇이 있는데, 그 그릇에 넘치게 감정을 담으면 힘들어질 수 있다고 해주셨다. 그 다음부터는 어떤 상황에서 타인의 감정만이 아닌 내 감정과 그 그릇을 함께 생각하게 되었다. 중기는 이렇게 나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상담 말기에는 나로서 삶을 살아내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내가 왜 이럴까? 이유를 알았으니 인정하고 깨달은 것을 토대로 어떻게 살지 결심하고 배웠다. 지금 내가 작다고 생각하는 나의 성취들도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목표의 범위를 좁혀 작은 목표를 세우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졸업을 무사히 하기 위해 졸업요건 ‘기사 자격증 따기’를 세우고 이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성취에도 나를 칭찬 하는 것이 쉬워졌다. 그리고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다. 무작정 잘하지 못하고 노력하지 않은 나를 비난하지 않았다. 단지, 후회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다. 엄마와의 대화에서도 조금씩 표현하기 시작했다. 내가 왜 아팠는지 불안했는지 말이다. 엄마와 언니 사이에서 중재로 힘들었던 것에 대해 처음으로 표현했다. 이로 인해 알게 된 것은 아무도 내가 중재를 힘들어한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이다. 가족들도 놀랐고, 나도 놀랐다. 표현의 중요성을 깨달게 된 경험이었다. 이러한 나의 결심과 삶에서의 실천에는 모두 상담 선생님의 무한한 지지가 기동력이 되었다. 매주 일정한 시간 동안 공감과 응원을 받는 것은 생각보다 더 큰 힘이 되었다. 물론 삶의 모든 부분이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 엄마는 지금도 나의 정서적인 독립과 이를 위한 표현을 받아 들이기 어려워하셨다. 상담 마지막 날에도 엄마와의 갈등은 끝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나는 처음으로 분노라는 감정을 느꼈다. 항상 죄책감과 슬픈 감정만 있던 나에게는 꽤 큰 혼란을 주었다. 하지만 상담 선생님은 이 또한 유의미한 발전이라고 말씀해주셨고, 솔직하게 내 감정을 받아들여 보기로 했다. 그리고 나의 감정을 받아들이고 나니 엄마의 감정이 어떠한지 살펴보게 되었다. 삶은 계속되고, 상담은 끝났지만, 선생님께서는 나를 마지막까지 응원해주셨다. 응원에 힘을 받은 1학기가 끝났고 2학기 상담도 진행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인턴을 하게 되어 종료하게 되었다.


상담은 내 삶의 환경을 바꿔주지는 못하지만, 그 상황 속에 나를 변화시켜준다. 상담 선생님이 답은 A다 말하진 않으시지만, 대화를 통해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다. 누가 어떤 말을 해주더라도 본인이 깨닫고 느낀 것 만큼 큰 효용감을 주는 것은 없다. 하지만 이를 깨닫는 것에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도 있다.

나의 상담 전과 후를 비교해보면, 우선 미래를 준비하는데 스트레스만 받는 것이 아니라 목표와 방법을 설계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나에 대한 이해가 커졌고, 나에 대한 이해를 타인에 대한 이해로 넓힐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소통하고 표현하는 방법을 배웠고 거기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이를 대화와 삶에 적용할 수 있게 되었다. 삶의 문제는 계속되지만, 이제는 도저히 할 수 없었던 Love myself를 하며 조금씩 나를 더 아껴주고 안아주고 있다. 그래서 상담을 신청했던 날이 너무나도 소중하고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소중한 나를 알게 해준 상담프로그램을 만나는 사람마다 추천하고 있다.

누군가 내 글을 읽게 된다면, 나 정도로 상담을? 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삶의 무게는 사람마다 다르다. 감기에 걸리면 병원에 가듯이 조금이라도 힘들거나 고민이 되는 일이 있다면 주저 없이 상담을 받아보기를 추천한다. 답은 내 안에 있고, 내가 변화하면 삶도 변화한다. 상담이 아니었다면, 스스로 깨닫기는 어려웠을 나의 문제들을 이곳에서 털어놓고 덜 아팠으면 좋겠다. 다들 외면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내 안의 누군가를 꼭 안아줄 수 있는 성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끝도 없이 아래로 잠수만 하던 내가 조금씩 주변을 살피고 나라는 보물을 찾은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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