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학년도 5회_ 우수상] 나를 받아들이는 과정
- 작성자박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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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은 항상 나의 삶에 함께였다. 마치 걱정할 거리를 찾아다니는 사람처럼 이것저것 걱정하고, 고민하며 스스로 끝없이 파고들었다. 사소한 일에 과도하게 신경을 쓰며 스트레스를 쌓아 갔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나에게 치명적인 독이되어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 나를 갉아먹고 있음을 알았다. 아무도 강요한 적 없지만 지고 있는 이 짐을 내려놓고 싶었고 조금 더 단순하게 살고 싶었다. 나름 이런 성격을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던 방법이 과연 괜찮은지도 궁금하였다. 혼자서 머리가 터질 듯이 고민하는 이 문제들에 대한 제 3자의 객관적인 눈이 필요했다. 나의 성격을 되돌아보고 더 잘 살기 위한 한 걸음을 떼기 위해 상담을 신청했다. 첫 상담은 매우 긴장됐고 어떤 이야기를 해야할지, 어떻게 이야기해야 올바른지 혼란스러웠었다. 상담에 와서까지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허탈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오랫동안 고민하고, 결심하고 상담에 온 만큼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조금은 태연해지기로 했다. 상담 선생님이지만 처음 보는 사람한테 나의 고민거리와 문제점을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마치 아무렇지 않은 척, 불편하지 않은 척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잘한 일인 것 같다. 나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마음 속 깊은 곳에는 누군가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렇게 상담이 시작됐다.
상담을 받기 전부터 나는 ‘감정노트’를 작성하고 있었다. 1년 전부터 작성하기 시작했는데, 고민이 있거나 무언가를 다 쏟아 내버리고 싶을 때 편하게 진솔하게 작성해왔다. 최근에는 이 노트를 작성할 만큼의 여유도 없이 바쁘게 살아갔는데, 상담을 시작하며 노트를 다시 읽어보았다. 노트 속에는 불안, 강박, 자기비하, 타인의 시선, 감정적 이 5가지의 모습이 가장 잘 나타나있었다. 고치고 싶은 나의 성격을 조금 더 확실히 정할 수 있었다. 나는 왜 이렇게 항상 불안해할까?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 과하게 걱정하고 초조해한다. 미래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으며 내가 통제할 수 없음을 머리로는 잘 알고 있지만 마음은 쉽게 내려놓을 수가 없다. 취미생활로 즐기고 있는 전시회와 뮤지컬을 언제 가고 무엇을 볼지부터 복수 전공 합격, 나의 미래까지 광범위하게 모든 일에 걱정이 뿌리 깊게 잡혀있다. 하나하나 계획을 세워두고, 그 계획이 실패할 때 차선책까지 마련하며 스스로를 옭아매었다. 아무런 생각과 계획 없이 삶을 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나의 모습은 마치 강박과도 같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계획을 세워봤자 미래는 나의 마음처럼 흘러가지 않아 모두 쓸데없어진 적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입술이나 손을 뜯는 신체적인 안좋은 습관도 생기고, 스트레스로 다른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예민한 상태가 이어지곤 했었다. 그러나 한 가지 다행인 것이 있었는데, 이렇게 생각이 많고 걱정이 많은 성격답게 나의 문제점도 오랫동안 생각하고 고민하여 난 나의 문제를 아주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상담 선생님과는 해결 방법을 주로 이야기 하고 싶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내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하셨다. 나는 나의 이런 모습이 고쳐야 할 문제라고만 생각했는데, 선생님은 내가 잘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어안이 벙벙했다. 아무런 고민이나 계획 없이 살아가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내가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선생님의 말씀이 더욱 인상깊었다. 내가 강박적이라고 느끼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기에 분명 개선할 필요가 있는 것은 맞지만 결국 이는 모두 잘 살고 싶은 마음, 무엇이든 열심히 해내고 싶은 마음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때 처음으로 어쩌면 이 단점을 장점으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스트레스를 받는 근본적인 이유를 생각해 보라고 하셨는데,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을까봐 불안한 마음과 계획을 지키지 못하는 나의 모습 이 두 가지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선생님은 통제할 수 없는 것에도 통제하려는 욕구가 강해서 이런 모습이 나타난다고 하셨다. 그동안은 내가 통제 욕구가 강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선생님 말씀을 들었을 때 이해가 잘되지 않았다. 하지만 기질 검사를 해본 결과, 통제기질이 매우 높게 나왔다. 결과를 본 후 천천히 나의 모습을 되돌아보았고, 하나씩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강박적으로 모든 일에 계획을 세우고, 불안해하고, 타인의 눈치를 보는 행동까지 모두 나 스스로를 통제하려는 욕구와 타인을 통제하고 싶은 욕구가 높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은 통제할 수 없는 것은 놓아주고,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고 하셨다. 나의 행동, 시간을 보내는 방법, 생각 등 오롯이 나로인한 것들에 말이다. 어쩌면 나는 가장 쉽고 간단한 방법을 바로 옆에 두고 멀리서 헤매고 있었던 것 같다. 결론적으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오늘에 대한 계획만 세우고, 그것을 충실히 지키는 것까지만 생각하자! 라고 다짐을 하였다. 아무리 미래에 대단한 계획을 세워도 오늘 없이는 절대 미래가 올 수 없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에게는 큰 깨달음이었다. 그래서 미래에 대한 생각은 조금만 하고, 현재에 더욱 집중하기로 하였다. 물론 여전히 걱정은 된다. 아무리 내가 통제할 수 없다고 해도 나의 예측과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그것 또한 그때 걱정을 하면 된다. 지금 미리 걱정하고, 고민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난 후 마음이 매우 편해졌다. 나를 괴롭히던 강박적인 생각을 밀어낼 수 있었고 스스로 올려놓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었다.
10번의 상담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나를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 남들보다 생각이 많고, 예민하고, 감정적인 ‘나’도 결국엔 ‘나’라는 것을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이는 기질을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이었다. 기질 검사 결과로 행동으로 활성화하는 자극추구 기질은 평균보다 낮게, 행동을 억제하는 위험회피 기질은 평균보다 매우 높게 나왔다. 처음 결과를 봤을 때는 충격적이었다. 내가 정말 이렇다고? 라는 생각만 들었다. 사실 애초에 사람이 특정 성향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부터 이해되지 않았다. 부모님의 성격을 생각해보아도 나와는 너무 다르며, 유년시절 또한 좋았다. 부모님은 나를 많이 사랑하시며 충분한 애착 관계를 형성하였고 세상에 대한 불신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런 것과는 별개로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각자만의 타고난 기질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잘못된 것도 아니고 문제도 아니다. 나는 단지 평균의 사람들 보다 민감하고, 조심스럽고, 생각이 많은 기질을 타고 났을 뿐이다. 성격이 예민하다는 것은 알고있었지만 직접 수치로 확인을 하니 마음에 더욱 크게 와닿았다. 그리고 이럴 수 밖에 없던 ‘나’를 보듬어주고 싶었다. 항상 머릿속은 고민거리로 가득 차있고, 마음속은 상처와 후회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상담을 진행하며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내가 대견했다. 상담 선생님의 응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애초에 상담에 온 이유는 문제점을 찾기보다는 해결 방법을 찾고 싶어서였는데, 선생님께서는 해결 방법은 물론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다는 응원도 해주셨다. 어쩌면 나는 내가 괜찮은지 확인받고 싶은 마음이 컸을지도 모른다.
상담이 모두 끝난 후에 나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믿고 사랑할 수 있게 되었으며, 과도한 걱정을 내려놓고 더 단순히 살아갈 수 있었다. 처음에는 고작 10회의 상담으로 무엇이 변할 수 있을까 하는 부정적인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꼭 눈에 띄는 변화가 있어야해! 나는 더 좋아져야만 해! 라는 부담을 애초에 가질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성격과 기질이라는 것이 갑자기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없다. 그저 오늘의 내가 깨달은 것들이 분명 나의 마음속에 하나씩 쌓여져 있을 것이고, 이것이 모여져 나에게 자연스럽게 체화될 것이다. 선생님께서 마지막 상담 때 해주신 말씀이 기억에 남는데, 9회차 상담때 나의 변화된 모습이 느껴졌다고 하셨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넓고 유연해졌으며 머리로도 이해하고 마음으로도 받아들인 모습이라고 하셨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지금까지도 잘 해왔고, 앞으로도 잘 해쳐나갈 더 단단해질 나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