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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학년도 6회_ 최우수상] 지지 받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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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상담은 14살 때였다. 그때부터 1년에 한 번씩은 상담실에 찾아갔다. 중학교에 다니는 동안에는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을 때는 우울감에 잡아먹혀 침대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해서, 그리고 첫 번째 대학에 입학했을 때는 새로운 환경에 혼자 있는 게 불안해져서 상담실에 다녔다. 두 번째 대학에 입학하고서도 불안 때문에 상담실을 찾았다. 1학기가 끝나갈 즈음에 첫 번째 상담을 시작하였고, 지금은 두 번째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벌써 9년이 지났다. 정말 오랜 시간 상담을 받아왔다. 하지만 정신병에 갇혀 있는 느낌은 여전했다. 온갖 증상으로 나를 표현하려고 했고, 증상 뒤로 많이 숨기도 했다. 정신병 속에 내가 있는 게 더 익숙했지만, 순서가 잘못된 것 같았다. ‘나’라는 주제 속에 정신병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 잘못된 상황에서 빠져나오고 싶었다. 그러려면 나를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나를 돌보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그래서 상담실에 찾아갔다.


이번 상담은 불안으로 시작했다. 나는 내가 어느 시점에 불안해질지 안다. 불안해지면 어떤 행동을 하는지도 안다. 아주 안 좋은 결과가 나올 것만 같지만 그렇지 않을 것이란 것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만약’이라는 단어가 있지 않은가. ‘만약’은 어느 순간 갑자기 나타나 나에게서 나를 빼앗는다.


첫 상담은 시험이 2주도 남지 않은 때였다. 조금 자랑을 하자면 이론 성적과 실기 성적 모두 나쁘지 않다. 그러면 뭐가 문제냐며 생각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항상 있다. 그중 가장 무서운 건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다. 불안해지면 항상 실망하는 사람들의 눈빛이 보였다. 기대를 충족시켜야만 잘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결과의 기준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맞추어져 있었다. 시험 중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는 것과 성적이 떨어져 장학금을 못 받게 되는 상황을 계속해서 생각해 불안과 걱정이 높아지고 있었다. 생각만으로도 힘이 빠지고 있던 때였다.


불안이 오면 항상 우울도 같이 온다. 그리고 우울이라는 감정이 찾아오면 나는 혼자 있으려고 한다. 함께 있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같이 있지 못하더라도 연락하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 우울한 내용으로 연락하는 것이 미안했다. 나의 우울한 모습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지 무서웠다. 그래서 혼자 그 오랜 시간을 버텼다. 버틸 날보다 버티지 못할 날이 더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늘은 버틸 수 있을 거라며 또다시 나를 혼자 두었다.


이제 나는 불안해질 때마다 감정을 잠재울 수 있는 증거를 찾는다. 저번 학기 시험 때 잘 해냈던 나의 모습을 찾고, 이번 학기 시험을 위해 시간을 쪼개 연습실을 찾았던 과거를 꺼내 불안을 다스린다.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불안해하고, ‘만약’이라는 단어를 꺼낼 때마다 두려워했지만 지금은 이 감정에서 잠시라도 떨어질 수 있다. 이제는 어떠한 감정이 드는 이유부터 그 생각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증명하는 근거까지 찾을 수 있다. 우울해질 때 연락하는 사람이 생기기도 하였다. 미안함과 두려움을 이겨내고 용기를 내 물어보았다. 너무 힘들면 아주 가끔 전화해도 되냐고. 너무 늦은 시간이나, 일하는 시간엔 안 하기로 약속하겠다고. 내가 정말로 죽으려고 할 때 안 된다는 말 한마디만 해달라고 부탁했다. 메시지를 보낸 후 또 불안해졌다. 이 부탁이 너무 과한 것이 아닌지, 부담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을지, 그래서 거절당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이런저런 걱정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상담 시간 때 배운 ‘증거 찾기’를 써보기로 했다. 그 사람은 항상 걱정된다고 말해왔고, 말만 하는 게 아닌 실제로 걱정해 주었다. 나의 우울과 불안에 함께 고민해 주었다. 이 생각들은 추측일 뿐이고, 지금까지 이런 추측들은 대부분 틀려왔다. 그러니 지금의 생각들은 너무 과한 불안일 것이라고. 다행히 이런 생각이 맞았다. 걱정된다는 메시지와 함께 당연히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기뻤다. 진심으로 걱정해 주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꼈다. 용기를 내서 물은 내가 대견했다. 나의 안전지대가 생긴 것 같아 뿌듯했다. 나의 첫 안전지대. 이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큰 힘이 된다.


상담은 약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을 바꿔주기도 하였다. 매번 약을 먹는 건 참 힘들다. 감기약도 일주일씩 챙겨 먹기 힘든데, 한 달씩이나 챙겨야 하는 정신건강의학과 약은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먹어야 함을 알기에 약을 받아왔지만, 많으면 2주가 넘는 양의 약을, 적으면 5일 정도의 약을 남기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약을 안 먹는 이유는 다양했다. 매일 꾸준히 챙겨 먹어야 함에 거부감이 있기도 하였고, 습관이 제대로 형성이 되지 않아 잊고 잠에 들은 적도 많다. 내 병을 인정하지 않아 약이 필요하지 않다고 느껴 먹지 않고 버틴 적도 있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술 때문에 많이 약을 빼 먹었다. 목 뒤로 넘길 때 이물질의 느낌이 싫어서 입에 넣고서 뱉어낸 적도 있다. 병원에 다니고 있었지만, 의사 선생님과의 목표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약물치료를 위해 병원에 다니는 것인데, 약을 안 먹으면 무슨 의미로 시간을 내 병원에 가겠는가. 알고 있었지만, 인정하기 싫었다. 상담을 받으면서 먹어야 함을 알면서도 먹지 않음을 말했다. 상담 선생님은 새로운 관점으로 약을 바라보자고 했다. 약은 괴롭히는 존재가 아니라 하루를 큰 일없이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존재, 더 넓게 보면 삶 옆에서 도와주는 존재라고. 그때부터 노력했다. 매일 챙겼다고 한다면 사실 거짓이다. 전처럼 일부러 빼 먹은 날도 가끔 있다. 그래도 전보다는 아주 많이 좋아졌다. 약을 먹기 위해 술도 안 먹으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고, 침대에 눕기 전엔 항상 근처에 물과 약을 놓고 자기 전에 꼭 먹는다.


상담을 받으면서 생긴 또 다른 변화는 나를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정말 많이 늘었다. 아직 많은 연습이 필요하지만, 한 개의 시선으로만 보지 않고,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하려 하고 있다. 전에는 한 가지의 생각에만 꽂혀 그 생각을 반복했다면, 요즘의 나는 내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알아챈다. 요즘은 상담 선생님이 말하기 전에 먼저 내 말을 반박한다. 그런 모습이 보일 땐 웃기면서도 뿌듯하다. 내가 이렇게 변하다니. 변할 수 있는 거였다니. 이 감정은 정말 귀하다. 뿌듯함을 넘어선 이 감정은 정말 값지다.


짧다고도, 길다고도 느낄 수 있는 50분이라는 시간은 감정을 안전하게 다룰 수 있게 해주었다. 자해 및 자살 금지 서약서를 쓰면서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우울할 때 전화할 수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 밖에선 하고 싶지 않은, 하고 싶어도 못 했던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게 해주었다. 상담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와는 다른 모습이었을까? 가끔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그리고 차이는 꽤 클 것 같다. 상담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와는 다른 모습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상담 선생님과 나의 노력이 지금을 만들어주었다.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노력할 나에게 감사를, 나와 함께 수많은 감정을 가꾸도록 도와주신 상담 선생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다.


이 글을 접하게 된 당신은 어떻게 들어오게 되었는가? 나는 상담 신청을 하기 위해 홈페이지를 둘러보다가 발견했다. 나는 간절했다. 누군가가 나를 구원해 주길 바랐다. 나를 제발 알아주길 원했다. 긴 시간 동안 상담을 받으면서 깨달은 점은 타인은 나를 구원해 줄 수 없다는 것, 나를 구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나뿐이란 것이었다. 정말 가혹한 말이다. 하지만, 상담 선생님과 함께라면 당신을 구할 수 있는 길에 가까워질 수 있다. 상담 선생님이 당신과 함께 길을 만들어 나아갈 것이다. 그러니 상담을 받을 생각이 아주 조금이라도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신청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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