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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학년도 6회_ 가작] 나를 위한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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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하면서 배운 것 중 하나는 우리가 겪는 감정적 고통이 때로는 얼마나 복잡하고 개인적인지 이해하는 것이다. 내가 심리상담센터를 찾았던 경험은 교과서에서 피상적으로 접했던 지식과는 완전히 다른, 더 깊은 깨달음을 주었다.


나는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이었지만 그만큼 누구보다 간절하게 살고싶은 사람이었다. 대학원에 들어와 쉼 없이 달려오기를 몇 년, 남들보다 늦은 시기에 대학원에 들어왔기에, 뒤처진 시간을 만회하고자 석사 졸업후 바로 박사과정을 시작했다. 수업과 세미나 등 할 일은 계속 몰아치고, 끊임없이 몰려드는 일거리들을 해치우면서 틈틈이 실험과 논문도 작성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어느날부터, 실험도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 시간이 늘기 시작했다. 시간을 들이고 노력하는건 똑같은데 내가 원하는 만큼의 결과물이 나오지 않으니 점점 지치기 시작했고, 그만큼 나 자신에 대한 채찍질은 더욱 거세지기 시작했다. 남들보다 늦은 학업을 따라잡으려는 압박감과 끝없는 자기 채찍질은 결국 나를 고립시키고, 일상에서 얻던 사소한 즐거움마저 느낄 여유가 없게 만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점점 나는 내가 무엇을 원하고, 어떤걸 목표로 했는지도 희미해진 채 그저 하루하루를 견디는 것이 목표가 되어버렸다.


결정적인 계기가 된 사건은 집으로 돌아가는 횡단보도에서 일어났다. 보행자신호가 들어와 길을 건널 때, 신호를 무시하고 오토바이 한 대가 내 앞을 쏜살같이 스쳐 지나가는 일이 있었다. 그때 ‘다칠뻔했네 위험해라’라는 생각을 뒤따르듯, ‘저기에 치이면 편했을 텐데’라고 생각하는 자신에게 놀랐다. 내 마음속 깊이 묻어둔 나조차 이해하기 힘든 감정이 터져 나왔을 때, 나는 처음으로 두려워졌고, 나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객관적으로 평가받을 필요성을 느꼈다.


상담 센터에서 받은 검사 결과를 보았을 때, 놀랐던 기억이 있다. 남들보다 높은 불안감과 우울 수준, 나는 정상이라고 믿고 싶었던 기대가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검사를 해 주신 선생님은 나에게 상담을 받아볼 것을 권했고, 내 첫 심리상담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처음 심리상담을 갔을 때에는 무척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상담 센터에 앉아 앞으로 10회차 동안 상담이 진행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현재 내 상황을 바꾸고 싶다는 마음과 정말 상담이 도움이 되겠냐는 마음이 공존했다. 실제로 진행된 상담도 내가 생각한 상담과 거리가 있었다. 나는 심리검사지 등을 통해 내 상태를 진단받고, 그에 맞는 조언과 행동 지침을 받으면 이를 하나씩 실천하는 방식으로 치료가 진행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 상담은 전혀 달랐다. 상담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며 내 내면 깊숙이 가라앉혀둔 감정을 끌어올리고, 이를 통해 나 자신을 새롭게 고찰하는 과정이었다. 내 속마음을 제3 자에게 털어놓는다는 건 무척이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나 자신이 힘들다는 걸 입 밖으로 꺼내놓는 순간 나 자신이 나약하고 무능한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느낌이었으니까.


초반에는 매 회차가 끝날 때마다 상담사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고 나면 계속 눈물이 나서 무척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상담을 받는다고 내 우울과 문제가 갑자기 해결되는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가라앉힌 감정들이 흙탕물처럼 뿌옇게 일어나 더 힘들고 무기력해지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내 감정과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에도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몸에 난 자그만 상처조차 낫는 데 며칠이 걸리는데, 내가 몇 년이나 힘들어한 마음의 상처도 나아지는데 최소한 그만큼의 노력과 시간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포기하고 싶을 때도 꾸준히 상담을 나갈 수 있었다.


상담을 받으면서, 어느 순간 나 자신의 감정이 전처럼 요동치지 않고, 상담사 선생님에게 차분하고 진솔하게 내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로 거짓말처럼 마음이 편해지게 된 계기는 단순하게도 내가 아프고 힘들었다는 걸 인정하고 나서였다. 나 자신이 힘들고 지쳤다는 걸 인정한 순간, 여유가 생기고, 여유가 생기니 나 자신을 챙기기 위해서 노력할 힘이 생겼다. 오랜만에 방을 치우고, 나를 위해서 요리를 하고, 점심시간에 산책도 하면서 나 자신에게 휴식을 주니 일도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너무나 오랜만에 영화를 보면서 즐겁다는 생각을 했을 때, 새삼스레 내가 정말 많이 나아졌구나 실감할 수 있었다.


상담이 끝날 무렵, 오랜 시간 붙들고 있던 논문 하나를 드디어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이전처럼 일이 힘들고, 나 자신이 무력하게 느껴져도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다시 한 발짝을 내디딜 힘이 생겼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단 하나다.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위로와 희망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만약 나처럼 누군가 나 자신이 너무나도 보잘것없이 느껴지고, 혹은 내일이 오는 걸이 너무 힘들어 모든 것을 놓고 싶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정말 아픈지 아닌지, 확신이 없어도, 내 고민이 너무 사소한 것처럼 느껴져도 괜찮다. 계기가 어떻든 바뀌고 싶다는 생각을 한 시점부터 당신은 더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상담 센터의 문은 언제나 열려있으니 용기 있게 두드려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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