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학년도 3회 전과학습클리닉_장려상] 자아를 찾게 된 6주
- 작성자이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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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회를 빌려 6주 동안 저를 도와준 강원대학교 천지관 2층 학습상담실, 전과학습클리닉을 같이 한 학우분들과 상담 선생님께 감사 인사드립니다.
여러분은 대학교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대학교가 하나의 작은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단연 지식에 관한 이야기뿐이 아닙니다. 진짜 사회에 나가기 전, 사회초년생이 되기 전 많은 것을 예습시켜 준다는 점이 그렇게 느껴집니다. 작게는 수강 신청, 특강, 비교과 프로그램 등의 신청부터, 크게는 진로 결정까지. 이것들은 누군가에게 맡길 수 없으며, 타인을 따라 하지도 못합니다. 저는 이번 학기를 보내며 이를 크게 느꼈습니다. 처음에는 ‘열심히 한다면’, ‘어떻게든’이라는 단어에 매몰되어 버티기를 택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세상 모든 일이 해결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노력만큼의 결과가 반드시 따라오거나 가만히 시간이 흐르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된다면 좋겠지만 세상은 의외로, 혹은 당연히도 그렇지 않았고, 저는 이를 알고 있었음에도 변화가 무섭다는 이유만으로 무의미한 버티기를 계속했습니다. 물론 자신이 지금 이것으로부터 회피하고 있고 자기 일에 대해서만 관대해진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타인의 시선이 무서워 그런 것이라고 머릿속에서 되뇌어 봐도 바뀌는 건 없고 자신이 비겁하다는 사실만을 되새김질하는 나날이 이어졌습니다. 그렇지만 안 맞는 옷을 계속 입는 것만큼 고역인 일도 없습니다.
그렇게 고민하던 어느 날 문득 ‘갑자기 세상의 모든 것들의 외견이 송두리째 바뀐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자고 일어났더니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집이 기능은 그대로지만 외견이 수박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사람들은 이에 어떤 반응을 할까요? 전 의외로 사람들이 그렇게 큰 반응은 하지 않을 거로 생각합니다. 물론 뉴스나 위키피디아의 한 페이지를 차지할 수야 있겠죠. 그렇지만 정부 기능에 이상이 생기거나, 사회가 극적으로 변하거나 하는 이변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사람들은 의외로 단체적인 변화에 민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는 현대 사회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개인주의 성향이 연관되어 있는데, 개인주의는 개인의 주체성과 독립성을 강조하며 개인의 정체성과 목표를 집단보다 우선시합니다. 즉 ‘자기 집’을 남들과 다르게 꾸미는 것에 집중하게 될 것이지, 타인이 집을 어떻게 꾸미는지, 어떤 식으로 리모델링하는지는 큰 관심이 없을 것입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타인보단 자신에게 초점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고 그들 중 대부분은 타인에게 그렇게 큰 관심을 쏟지 않습니다. 이는 가정이 아닌 현실에서도 그러합니다. 현실은 1분 1초마다 새로 덧씌워집니다. 그럼에도 사회는 변화하지 않고, 자신이 지금 어떻게 되고 있는가에 더 중점을 둡니다. 사람들이 타인에게 그렇게 큰 관심을 쏟지 않는다는 것을 알자,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아무도 나를 봐 주지 않으므로 우리는 자신의 상태를 인정하고 자신에게 자신에 대해 피로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이 전공과 맞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다른 학과에 도전하자는 새로운 눈이 뜨였습니다. 전공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나 하나의 편의를 봐주는 타인은 없고 그럼에도 세상은 돌아간다는 것과 세상에 나와 똑같은 사람은 없을뿐더러, 타인을 모방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돌아가는 길이라는 것. 그렇게 저는 대학생이라는 시기가 자아 탐색의 시간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렇지만 그 결론에 다다른 것과 별개로 고민은 이어졌습니다. 20년과 수개월이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라지만, 여태 나 스스로 목표를 세워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항상 과반수의 의견에 따르고, 멋져 보이는 사람을 따라 하고, 남들이 하니까 한다는 생각에 매몰되어 진짜 나 같은 게 뭔지 고민한 적도 없었습니다. 무엇부터 무엇까지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하단 생각에 나를 결과에 맞추는 게 아니라 결과를 나에게 맞추었습니다. 그렇게 살아오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니 어중간하고 줏대 없는 길이, 타이어 자국이 난 아스팔트 도로와 기차 레일이 이상하게 합쳐져서는 나를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목표의 중요성도 깨달았습니다.
지금에 와서야 이를 알게 된 것이 부끄러우면서도 한 걸음 나아간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앞으로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목표를 위해 사는 삶을 꾸려가기로 결심한 찰나, 그 목표를 세우지 못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만 대학생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올라온 홍보 글을 오고 전과학습클리닉을 신청했습니다. 혼자서 고민하는 게 어렵다면 그 분야에 대해 잘 아는 사람과, 타인들과 모여 의견을 교환하면 될 일이니까요.
막상 신청까지야 빠르게 했지만, 마치 동아줄을 잡는 기분이었습니다. 현재 학과에 적응하지 못해 다른 학과로 도망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클리닉을 받으러 가서도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마음이 바뀌었다고 말할까 여러 번 고민했습니다. 시작될 때까지 마음이 계속 불편했습니다. 그러나 클리닉이 시작되자마자 가장 먼저 한 활동은 이곳에서 이름 대신 불릴 별명을 자기 스스로 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평소에도, 앞으로도 고민할 일이 많다는 이유로 ‘고민’이라는 별명을 지었습니다만(그러나 이는 후에 이유를 더한 것에 가깝고, 다들 정한 것 같기에 단어 하나를 고르고 그 자리에서 이유를 붙인 꼴이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의 제 무의식이 반영된 것 아닐까? 합니다) 별명을 지은 후 왜 그렇게 지었는지 모두 한마디씩 나누었는데요, 같이 전과학습클리닉을 한 다른 분들도 모두 자신만의 고민을 끌어안고 계셨고 그에 기반을 두어 별명을 지은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별명을 쓴 목걸이를 걸고 대화를 하니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속내를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었습니다(이것도 그때 말했는데, 같이 클리닉을 하던 학우분도 이렇게 말이 쉽게 나오는 게 신기하다는 반응을 한 걸 기억합니다. 익명제의 순기능이라는 거겠죠). 저는 어릴 때부터 낯을 많이 가리고 대인관계에 서투른 탓에 항상 사귀던 친구들과만 만나 편하게 말하는 게 습관이 되어 있어 처음 보는 사람들과는 잘 대화하지 못하고 끝나는 게 고작이었는데, 손에 꼽을 정도로 만난 사람들과 이렇게 좋은 우정을 쌓은 것만으로도 너무 놀라웠습니다. 이후 전과학습클리닉을 몇 번 더 다니자 그나마 있던 마음의 벽도 허물어져, 진짜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피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 자신에게도요. 그렇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과 타인의 평가까지 합쳐지니(그 클리닉에서 알게 된 학우분과 상담 선생님이 저를 보고 표현을 잘한다. 공감 능력이 뛰어나니 그런 부문을 생각하는 것도 있을 법하다 등의 말을 보내주셨습니다) 내가 잘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하고 싶은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전과를 결심한 지 몇 달은 되었는데 정말 이걸 해도 되는 건가, 오히려 튀어 보이는 거 아닌가 싶은 마음에 고민하던 찰나 전과학습클리닉이라는 프로그램을 신청한 게 정말 잘한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전과라는 개념의 진입장벽을 낮춰 줄 뿐만 아니라 전과학습클리닉에서 한 활동 대부분이 자신의 진심을(정말로 자신이 하고 싶은 것부터, 크게는 정신적까지) 스스로 깨달을 수 있게 도와주는 활동이 대부분이라, 전과학습클리닉을 하며 자신의 사고와 문제 해결 방식, 안 좋았던 습관과 마주할 수 있었고 회차를 거듭할 때마다 내부의 자신이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한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과 이어질 수 있었고 그런 심리를 서로 여과 없이 보여주고 해결책을 같이 고민한다는 활동 자체로도 충분히 도움이 되었습니다.
대학이나 사회생활의 범주가 아닌 인생 전체의 범주로 본다면 전과는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 자신을 마주하고 건강한 정신을 가질 수 있는 시기는 지금이 아니면 없을 거로 생각합니다. 삶의 모든 선택에는 그만큼의 무게가 따릅니다. 전과라는 결정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무게에 짓눌려 자신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삶에서 크고 작은 실패와 선택의 순간을 수없이 마주합니다. 그런 실패와 선택이 하나씩 쌓여 하나의 인간이 형성되는 것이겠죠. 즉 중요한 건 결과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선택을 통해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나아가느냐입니다, 나 자신을 존중하며 내면의 나에게 귀 기울인다면, 그 선택은 반드시 앞으로의 인생에서 의미 있는 경험으로 남을 것입니다.